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면서 세계경기가 다소 호전돼 석유수요가 증가하는데 반해, 석유공급은 리비아 사태 등으로 인해 경색됨에 따라 원유가격이 상승하게 됐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빌미로 정유사에 석유제품가격의 인상자제 요구를 넘어 리터당 100원의 가격인하를 압박했다. 이로 인해 국제 원유가격이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석유수요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게 됐다. 또한 리터당 평균적으로 약 14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정유업계는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약 7,000억∼8,00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번지수 잘못 찾은 정부의 압박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물가안정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부의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일련의 개입(압박)은 잘못 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국제 석유가격이 오르면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은 오른다. 울산 앞바다의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소량의 경질유 외에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석유제품가격이 국제시장에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국제가격이 오를 때 석유제품가격을 많이 빨리 올리고, 내릴 때 적게 느리게 내린다는 가격비대칭을 믿고 있다. 그러나 연초에 구성된 정부의 석유안정화 대책반은 이러한 가격비대칭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다. 설령 석유제품의 가격비대칭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는 정유업계가 담합을 한다거나 과도한 이윤을 얻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유업계의 리터당 약 14원의 영업이익은 다른 산업에 비해 아주 작다. 정유업계를 압박해 영업이익을 내지 않게 한다고 해도 소비자의 석유제품가격 인하요구를 전혀 충족시킬 수 없다. 정부의 압박은 석유제품가격이 높은 이유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오히려 높은 세금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하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원유가격의 상승이 일시적이라면 석유안정기금의 조성이나, 정액 475원의 교통에너지환경세에 플러스 마이너스 30% 붙는 탄력세율의 조정을 통해 국내 석유제품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원유가격의 상승이 일시적이지 않다면, 상승 시 좀 덜 소비하고, 하락 시 좀 많이 소비하게 하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 된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외치면서도 저에너지가격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거꾸로 에너지다소비형 구조를 고착시켜 왔다. 인위적인 가격인하나 저에너지가격정책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정책에 장애가 될 뿐이다.
낮은 전력요금으로 인해 한국의 인구 1인당 전력소비는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을 제외하곤 OECD 국가 중 제일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의 전력소비는 2008∼2010년 2년간 무려 12.7%나 증가했다. 전력시장에서와 같이 석유시장에서도 정부의 개입이 지속되었다면, 한국의 석유소비는 지금보다 훨씬 크게 늘어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유업계가 저가격정책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고도화설비에 투자할 수 없었다면, 한국은 정유업에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해 석유제품의 순수출국에서 순수입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책
리터당 100원 인하를 도입할 당시 정부가 100원을 점진적으로 인하하자고 제안하지 않은 상황에서, 3개월이 지난 지금 기름값 환원 시 연착륙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석유제품가격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석유의 국제가격이 오르면 국내 제품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경쟁의 촉진과 함께 독과점의 폐단을 방지하는 것이지, 과도한 가격인하나 점진적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행정지도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름값이 묘하기보다는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정부정책이 묘하다고 느끼고 있다.
박희천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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