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깃·재원 고려없는 '묻지마 추진'땐 부메랑 불 보듯
그렇다. 어느 언론의 지적처럼 반값 등록금이 국민 세금 부담을 늘리고, 대기업에게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임직원에게 줄 자녀 등록금 보조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생 자녀가 있는 임직원들은 등록금이 반값이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다. 반값 등록금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직장에서 등록금을 보조하지 않거나, 직장도 다닐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 벌이가 시원치 않은 계층이다. 이런 계층에 등록금 혜택을 줄 경우 만족도가 매우 높아진다. 재원이 있다면 꼭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배분해야 효율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반값 아니면 무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쟁을 가만 들여다보면 ▦이해 관계자 전체에게 혜택을 줄 것이냐, ▦꼭 필요한 곳에만 혜택을 줄 것이냐, ▦이 모든 것이 포퓰리즘이니 아무것도 해줘서는 안 된다는 3가지 정도로 단순화할 수 있다. 포퓰리즘이건, 표(票)퓰리즘이건 말잔치로 들릴 뿐, 과연 재원이 있는가, 재원이 있다면 누구에게 혜택을 줄 것인가 하는 점에 논의가 집중되어야 할 것 같다.
오랜 시간을 끌어온 무상급식 논쟁이 대표적이다. 재산이 넉넉해 자녀 급식비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상위계층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는 없다. 진정 필요로 하는 계층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맞는 얘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까지 하겠다며 무상급식 반대에 나서는 것도 극히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승부수'라는 냄새가 나지만 일리가 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예를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연 소득이 일정수준 이하인 사람들은 학교에 자녀들의 무상급식을 신청할 수 있다. 무상급식 신청서가 학기초에 가정으로 배달된다. 거기에 연소득 얼마라고 체크만 하면 무상급식이 이뤄진다. 자발적으로 신청하면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저소득층 자녀들이 학교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일도 없다.
경기도의 예를 보면 무상급식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과 지자체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올 2학기부터 자체 예산으로 시작해 내년에는 지자체와 협력사업으로 유치원생 15만여명 전원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무상급식 예산에 도교육청이 290억원, 지자체가 307억원을 분담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또 내년 중학교 2~3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하기로 하고 관련 예산 1,651억원 중 도교육청이 779억원, 지자체가 872억원을 분담하도록 계획했다. 올해부터 시작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의 재원도 도교육청이 1,941억원, 지자체가 1,210억원을 분담했다.
이처럼 예산 규모만 해도 솔찮다. 이래저래 수천억원에 이른다. 그 바람에 시ㆍ군 등 지자체들이 죽을 맛이다. 지자체에서는 "표를 의식해야 하는 민선 단체장들이 무상급식 확대와 관련해 제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며 "지자체의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도교육청의 일방적인 무상급식 확대에 시장ㆍ군수들이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기름값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이야 기름값이 비싸면 승용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리고 웬만한 기업 임직원들은 기름값 보조비가 나온다. 현대오일뱅크 권오갑 사장의 말대로 에쿠스를 타는 이들은 기름값이 올라도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집단이다. 권 사장은 "부자와 서민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기름값 인하는 분배 차원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6일 전경련 경제정책위원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기름값 결정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기금을 만들어 빈곤층이나 생계형 자영업자 등 소외된 이웃에게 바우처 형태로 기름을 제공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오히려 트럭으로 날품팔이나 택배를 하는 계층 등 높은 유가로 고통을 받는 계층에 기름값 인하 혜택을 집중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그래야 정유회사도 명분도 갖고 생색도 난다.
문제는 지난 7일부터 기름값 100원 할인조치가 끝났기 때문에 새로운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유사들에게 "기름값에 대한 부담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말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알아서 기름값을 올리지 말아달라는 얘기인데, 계속 정유사에 대해 '손목 비틀기'를 하겠다는 암시로, 정부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있다.
엄연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에서 정부가 개입해 시장논리를 거스르려 하는 것도 '권위주의형 관치'에 해당된다. 민간기업이 손해를 봐도 정부 정책을 따라오라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전기료 수도료 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은 무더기 인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은 손해를 봐도 정부는 손해 볼 수 없다는 논리니 기업들이 이에 기꺼이 응할 리 만무하다.
무상聘? 반값 등록금, 기름값 인하 등이 모두 '표'풀리즘일지언정, 싸잡아 포퓰리즘으로 매도할 것은 아니다. 정부의 재정이 넘쳐나서 굳이 상하위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지원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한정적인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것이 효율적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방안을 만들어내야 할 일이지, 거두절미하고 포퓰리즘이라는 이념의 딱지를 붙여서 반대하는 것도 개탄할 일이다. 또 부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의 범주를 벗어난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기름값 인하, 지하철 공짜표 모두 국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재원이 넘쳐난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얘기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계층에게까지 혜택을 주는 것은 재원의 합리적 분배라는 측면에서는 실패작이다. 정부의 정책은 극히 치밀하고 정교해야 한다. 계층별로 세분화해 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괄적인 수혜를 주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그야 말로 무책임한 행위다. 환부에 정교하게 메스를 들이대야 하는데도 방법을 찾지 못해 아예 환부 전체를 도려내는 것과 같다.
아직 아무런 방안도 확정되지 않은 반값 등록금 문제만큼이라도 매우 정교하고 세부적인 접근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바람이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 포퓰리즘 이어 포크배럴까지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요즘 입만 열면 '포퓰리즘(populism)'이다. 여기에 '포크 배럴(pork barrel)'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일종의 이념, 정치철학, 담론, 사회ㆍ정치적 사고 등으로 엘리트에 대치되는 대중의 개념을 포함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또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의 레토릭으로도 정의될 수 있다. 캠브리지사전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와 희망을 담은 정치적 아이디어나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포퓰리즘에 대치되는 개념은 스테이티즘(statism)으로, 소수의 전문가집단들이 대중들을 대신해서 정책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사례로 볼 때 포퓰리즘은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당이나 정부기구 등을 무시한 채 지도자들이 연설 등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이다.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포퓰리즘을 활용한 케이스다.
우리나라 사전에는 대중적인 인기,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일반 대중을 호도하여 지지도를 이끌어내고 대중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하려는 정치형태를 말한다고 되어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포퓰리즘이 선심성 정책, 친서민 정책, 대중연합주의 등과 혼동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최근 '우파 포퓰리즘'을 주창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개념이 성립되는지는 몰라도 홍대 표는 "반값 등록금'과 서민복지 확대, 전ㆍ월세 상한제, 비정규직 대책 등은 좋은 우파 포퓰리즘"이라며 "민주당의 '무상 시리즈'처럼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좌파 포퓰리즘과는 다르다"고 했다.
여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포크배럴 개념을 내세웠다. 포크배럴의 원 뜻은 가축 먹이통인데, 의원들이 정부보조금을 따내려고 모여드는 행태를 빗댄 말로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개념이다. 박 장관은 "일하는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 맞춤형 복지, 이 3가지 원칙에 어긋나는 이들을 포퓰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압권은 한나라당 정두언 전 최고위원의 발언. 정 전 최고위원은 "포퓰리즘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재원 대책이 있느냐에 달려있다"면서 "재원 대책이 없거나 빚을 내서 하겠다는 게 포퓰리즘"이라고 밝혔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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