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두메산골 50년/한상복 지음·엄상빈 사진/눈빛 발행·352쪽·1만8,000원
인류학자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학 3학년 여름방학이던 1960년 7, 8월 강원 평창군 진부면 봉산리와 대관령면 용산리 마을을 40일간 조사 연구했다. 하루 세 끼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감자만 먹으며(일행 중 며칠 감자 먹다 울컥 눈물 쏟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두 마을의 환경과 역사, 이런저런 주민생활을 상세히 조사해 '민족지(民族誌)' 기록을 완성했다. 그 후 몇 번의 추가 조사를 했고 2009, 2010년에 50년만에 사진가와 동행한 본격적인 답사를 다시 실시했다.
<평창 두메산골 50년> 은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평창 산골 두 마을에 대한 인류학적 산촌 보고서다. 구술 등을 통해 우리 민중생활사를 기록해온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화룡점정'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마을ㆍ어제와 오늘' 총서 작업의 첫 권이다.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거나 치르고 나면 또 얼마나 변모할지 알 수 없지만 반세기 동안 평창 두메산골은 참 많이도 변했다. 다른 산촌이나 농어촌도 비슷하겠지만 이곳의 인구는 13% 정도 감소해 마을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평균 6명 안팎이던 가구당 가족 수는 지금은 2명 남짓으로 줄었다. 친족관계로 그물 같이 엮었던 마을의 인맥은 지금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마을 안에 혼인 적령기의 청년 남녀가 아무도 없다.
두레 품앗이 울력 같은 농업노동의 여러 형태도 없어졌다.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건 의식주 생활양식이다. 50년 전 조사 때는 남녀 주민 모두 흰색 한복 차림이었고 미혼 남성은 머리를 땋아 등 뒤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변화가 얼마나 컸으면 당시 5세였던 봉산리의 지금 이장은 한 교수가 찍은 사진과 조사보고서를 들고 온 강원대 인류학과 대학원생들에게 과장해서 만든 자료라며 훈계까지 했을까. 감자를 캐기 시작해 옥수수가 날 때까지 하루 세 끼 감자만 먹는 집은 지금은 없다.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자연경관과 함께 마을 이름, 지역 경계, 지명과 산천의 고유명사 정도다. 주민들의 공동체 신앙과 의례의 상징인 서낭당, 서낭제, 조상숭배의례인 기제(忌祭), 시제(時祭)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한 교수처럼 40, 50년 전 한국 인류학이 움터 오를 무렵 인류학도로서 전국 여러 마을을 살폈던, 지금 우리 학계의 중진이자 원로 학자들이 역시 반세기만의 재조사를 거쳐 집필한다. 최협(전남대) 김광억 전경수(이상 서울대) 박종렬 유명기 이덕성(이상 경북대) 교수 등이 주역이다.
평창 같은 강원도 두메산골뿐 아니라 전라도 평야, 경상도의 비산비야 농촌, 한반도 남반부 중심의 대표적 농촌, 전라도 남해의 반농반어 섬마을과 충청도 철도변의 소도시, 서울 청계천 옆 판자촌도 포함돼 있다. 이 총서를 기획ㆍ진행하는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의 박현수 단장은 "전통적인 민족지 연구에 시간의 깊이를 부여하고 기존 역사 서술방식에 총체론적 구조 개념을 부여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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