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디어드리 배릿 지음·김한영 옮김/이순 발행·268쪽·1만3,800원
늘 먹던 라면을 한 젓가락 뜨면서 '성인 나트륨 과다 섭취'라는 며칠 전 신문 기사 제목이 문득 떠오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라면에는 역시 인이 박이게 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는 것이 좋겠다.
미국 하버드 의대 진화심리학 교수가 쓴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는 미의식에서 먹을거리, 오락, 전쟁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이 얼마나 과도한 자극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고 또 그것에 취해 왔는지 설명한 책이다. 갈수록 더욱 세련되고 교묘하게 자극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은 무엇이며 그것이 많은 사람을 결국 어떤 해악으로 몰고 가는지, 그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너무 맛있다고 느낄 때, 너무 재미있다고 감동할 때, 그것에 대해 한 번은 의심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다. 인간은>
너무 멋있어서 우리를 끊임 없이 유혹하는 사회ㆍ문화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초정상(超正常) 자극'이라는 개념을 빌려 온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의 니코 틴버겐(1907~1988)이 만들어낸 이 말은 실물보다 실험자가 만든 모조품이 동물의 본능을 더 강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틴버겐은 회색 반점이 있는 작고 푸르스름한 알을 낳는 새들을 연구한 끝에 그 새들이 검은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큼직하고 새파란 석고알 위에 앉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물보다 과장된 모조품이 발산하는 매력에 더 끌린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자신의 알을 다른 새에게 맡겨 키우는 뻐꾸기의 탁란(托卵)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뻐꾸기 알을 떠 맡은 뱁새는 제 알보다 좀더 크고 밝은 뻐꾸기 알 위에 앉기를 더 좋아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깃털보다 멋있는 가짜 깃털을 단 수컷 새가 암컷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이 같은 자극적인 상황에 유혹 당하는 동물의 습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개는 인간이 만든 실험 상황에서다.
반응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간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 같은 '초정상 자극'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과일보다 달콤한 사탕을, 어떤 아기보다 눈이 큰 봉제인형을, 성적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를, 현실보다 훨씬 극적인 드라마를, 끊임 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임을, 위협적인 적에 대한 끝없는 선전선동을 인간은 직접 창조할 수 있다.
이 같은 음식이나 섹스, 영역 보호 등을 위한 인간의 갈망은 1만년 전 아프리카 초원지대인 사바나에서 삶을 위해 진화한 것들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먹을거리의 경우 기름진 음식이나 설탕, 소금에 대한 간절한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사바나에서 생존에 꼭 필요하나 희소했던 그런 물질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인간의 욕구를 지금은 패스트푸드 업체와 광고주들이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 물질을 '초정상'으로 가득 담은 '모형 음식'들은 주위에 널려 있고 이제 '우리는 거대한 푸드 코트에서 길을 잃은 수렵채집인들'처럼 돼 버렸다.
남자의 성적 본능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나 여성의 성적인 환상을 충족하는 멜로드라마도, 영역 본능에 불타오르게 하는 맹목적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다. 상업적으로, 정치적으로 각각 진짜보다 더 강렬한 매력을 가진 '모조품'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과도한 자극들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지방과 당분과 탄수화물을 정제해 만든 정크푸드가 우리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농업으로 정착생활을 하면서 인구밀도가 급격히 증가한 환경에서 영역 본능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것은 결국 전쟁이라는 재난을 부른다. TV, 스포츠, 오락은 인간의 자연스런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고 점점 고립과 단절을 키워 간다.
"정크푸드에 세금을 매기거나 더 나아가 족쇄를 채우고,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TV를 줄이기로 결심"해야 한다거나 "전세계 사람들의 견해, 공통점, 인간성을 널리 홍보하고 별 차이가 없는 인간 집단들 사이에 싸움을 조장하는 지도자들을 반사적으로 경계하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널린 '초정상 자극'을 먼저 인식하고 이를 줄여나가도록 '습관화' 해야 한다는 저자의 해법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허기, 성적 흥분, 욕심을 점점 더 강하게 자극하도록 설계된 세계에서 초정상 자극들을 따라가는 것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데 동의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석고 알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 가짜 알 위에서 내려올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적잖은 격려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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