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취잿길에 도쿄의 전자상가로 유명했던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한 푼이라도 싼 자동카메라를 사려고 뒤지고 다녔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 최초의 내 카메라를 가졌다. 그 이후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내 손을 거쳐 지나갔고 추억으로 사진을 남겼다.
우리 집 최초의 카메라는 중고 필름 카메라였다. 초등학교 때였다. 아버지는 그 카메라로 사진 한 장 찍어주지 않았다. 카메라는 우리 집에 며칠 걸려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몰래 그 카메라를 들고 나와 동네 친구들에게 '가짜 사진'을 찍어주었다. 빈 카메라였지만 필름을 감는 레버를 돌려 셔터를 누르면 '찰칵'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났다.
중학교 때 사진관에서 '하프 카메라'를 빌려주었다. 필름 한 장으로 두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였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한인회장을 맡은 최갈렙 선배와 그 카메라를 빌려 찍은 추억의 흑백사진 몇 장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디지털시대 편리한 카메라가 지천이다.
가는 곳마다 카메라가 넘쳐난다. 하지만 사진은 휴대폰 속에, 컴퓨터 속에 JPG파일로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웹에 올리거나 전송할 뿐 인화하지 않는 디지털 시대 0과 1로 조합된 밋밋한 사진. 추억은 인화될 때 완성되는데 문명은 사람을 사람 편리한 대로 '퇴화'시킨다. 옛날 사진첩을 찾아봐야겠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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