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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 손열음, 스승 김대진 교수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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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 손열음, 스승 김대진 교수와의 대화

입력
2011.07.0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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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아이다, 보통 아이와는 다르구나 생각했지요."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김대진(49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는 13년 전 일을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객석은 텅 비었지만 무대 위는 8월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8일간 열리는 '피아노 & 피아노'의 팜플렛에 실을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콩쿠르의 꽃'인 피아노 부문 2위에 오른 손열음(25ㆍ하노버국립음대 박사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촬영팀의 열기가 조명 불빛보다 더 뜨거웠다.

국어 교사인 어머니 최현숙(51)씨의 예언이 멋들어지게 적중한 셈이다. '열매를 맺음'이라는 뜻을 품은 이름의 딸은 콧대 높은 러시아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싹은 교수의 인연이 틔웠다. 1998년 9월 김 교수의 방으로 신입생 손열음이 인사 왔다.

"절대 남이 흉내 내지 못할 개성과 독창성이 있었어요. 똑같이 치는 법이 없었거든요. 후천적 습득이라기보다 본인의 재주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한 재즈라면 이해하겠지만 클래식 교수인 김씨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는 '궁합 맞는' 학생임을 직감했다. "큰 틀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이었죠." 이 별난 학생에게는 "일정한 틀, 객관성 안의 개성"이 필요함을 스승은 알아챘다. "특정한 해석을 요구하면 더 안 되는 학생 말예요."

이번 콩쿠르에서도 손열음은 자신의 개성을 한껏 살렸다. "열음이는 2009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준우승 등으로 너무 알려져 잘 하면 본전, 못 하면 쌓은 것을 다 잃게 되는 상황이었죠." 그런 부담을 잘 알고도 그 같은 결과를 냈으니 스승은 감격했다.

"콩쿠르의 객관성이란 엄밀히 말해 없는 법이거든요." 결국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우승했다. 스승의 말에 제자는 "러시아가 자국민을 챙기고 미국이 상품 가치만 따지듯 콩쿠르는 공정할 수 없다"라고 저간의 경험치를 압축했다.

"러시아의 자존심이랄까, 그네들 축제 같았어요." 이제 손열음은 콩쿠르의 유혹을 떨쳐냈다. "앞으로는 안 나갈 거에요. 콩쿠르는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한 디딤대니까요." 5년째 독일에 있는 그는 유럽이 아시아 여자 음악인에게 얼마나 인색한 곳인지 체감했다. 하지만 노력 끝에 그는 기회의 장을 열었다. "미국의 오푸스, 유럽의 인터뮤지카, 러시아의 모스크바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3년간의 연주 기회를 보장했어요." 현실적으로 그는 유럽 시장을 택했다. "문화적 콧대가 높은 만큼 청중의 음악 사랑이 순수한 곳이죠."

손열음은 가장 좋아하는 장르로 실내악을 꼽았다.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실내악 축제인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무대는 외국에 있더라도 꼭 와요. 가장 중독성 있는 장르죠." 그의 눈이 정확한 걸까? "역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서 수상한 피아니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정명훈씨가 2위 했을 때 3위에 머무른 러시아의 유리 에고로프예요. 그가 연주한 슈만의 실내악은 최고죠."

손열음은 이제 21세기와 클래식 음악의 관계를 가늠하는 위치에 섰다. "클래식 음악이 시장화돼 대중에 팔 수 있는 사람만 취급 받는 때죠." 시장주의에 대해, 그는 또박또박 말한다. "예술가로서 타협 않겠습니다. 팔리기 위해 연주하지는 않을 거예요." 콩쿠르란 연주 기회를 현실적으로 얻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것. 이번 수상으로 9월 러시아, 10~11월 일본, 내년 1월 미국 등 연주 스케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해라." 금호아트홀의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당부했다. '지금처럼'에 유달리 강세가 들어갔다. "최근 2년 새 연주 수준이 부쩍 높아졌어요." 무대 경험이 쌓여 성숙한 연주자가 되고 있다는 스승의 말을 제자가 받는다. "예술은 놀라게 하려, 성적 내려 하는 게 아니죠. 평생 하는 것, 그게 예술이잖아요."

그 제자는 어느새 음반 기록이 제법 쌓였다. 잔뼈가 굵은 금호아트홀에서 녹음한 '쇼팽의 연습곡'(2004년), 쇼팽의 '야상곡'(2008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입상 실황'(2009년) 등이 그것. 당장은 20일 부천시민회관대강당에서 부천필(지휘 박영민)과 함께 들려줄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2번 A장조'로 국내 팬들을 맞는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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