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봄 오랫동안 사업체를 운영해오던 이모(40)씨는 몇 달째 지속되는 속 쓰림 증상으로 고생하다 동네 병원을 찾았다. 단순한 위염 정도로 여겼는데, 병원에선 더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를 찾은 이씨는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간의 절반 이상에 악성종양세포가 들어차 있어 메스를 댈 여지조차 없다는 설명이었다.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살리기 위해선 특별한 대안이 필요했다. 의료진은 '꿈의 방사선치료기'라 불리는 토모테라피를 항암치료와 병행하기로 했다. 하루 한 번씩 총 25회 토모테라피 치료를 받은 이씨의 상태는 치료 한 달을 넘기면서 급격히 좋아졌다. 혈액을 이용한 종양표지자검사 수치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올 봄 이씨가 토모테라피 치료를 마친 지 2년이 됐다. 이씨의 간을 괴롭히던 종양세포는 모두 사라졌고, 암 치료를 받았던 흔적만 남았다. 혈액검사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익재 교수에게 수술하지 않고도 암세포를 파괴하는 맞춤형 방사선치료기인 토모테라피에 대해 들어봤다.
Q. 토모테라피는 어떤 치료법인가.
"방사선은 암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요법, 암세포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약물요법과 함께 쓰이는 3대 암 치료법 중 하나다. 미국에선 전체 암 환자의 약 60%가 받고 있을 정도로 방사선 치료가 보편화했고, 최근 들어 치료 영역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토모테라피는 방사선치료기의 대표주자다. 방사선 발생장치가 360도 돌아가면서 신체 부위를 여러 단면으로 나눠 방사선을 쏜다. '토모(tomo)'는 절단면이나 쪼개진 부분을 뜻하는 영어 접두어다. 방사선의 세기와 형태, 크기를 컴퓨터가 연속적으로 조절하고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가 이동하는 토모테라피는 어느 방향에서도 정확하게 방사선을 내리쬘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토모테라피는 또 한 번의 시술로 여러 부위에 퍼진 종양조직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유용하다. 신체 부위를 잘게 나눠 방사선을 쬐기 때문에 정상 조직이나 장기에는 피해가 거의 없으며, 치료 중 종양의 크기 변화를 별도로 검사하지 않고 내장된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살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결국 토모테라피는 세기조절장치(IMRT)나 영상유도장치, 감마나이프, 사이버나이프 등 기존 방사선 치료기기들의 장점을 한데 모아놓은 기기다."
Q. 토모테라피로 치료할 수 있는 암은.
"모든 암에 적용할 수 있다. 다른 방사선치료법이나 수술요법으로 어려웠던 척추종양과 뇌종양, 두경부암(뇌를 뺀 머리와 목 부위에 생긴 암), 전신원발성암(온몸에 넓게 퍼진 암), 전이암, 재발된 종양 등에서 좀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병소가 깊고 중요한 기관들에 둘러싸여 수술이 어려운 두경부암은 토모테라피가 적합하다. 종양 크기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맞춤치료까지 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종양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체내 여러 부위에 퍼진 경우 기존 방사선 치료기기로는 방사선을 넓은 범위에 내리쬐야 했다. 하지만 토모테라피는 한 번의 치료로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치료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Q. 치료 과정은.
"먼저 환자 온몸의 3차원 영상을 얻고 특수 소프트웨어로 종양과 그 주위 정상 장기 형태를 정밀하게 그려낸다. 이를 토대로 임상경험이 풍부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와 의학물리학자들이 방사선 조사(照射) 방향과 조사량 등을 결정해 기기에 입력하는 치료설계에 들어간다. 이후 오차를 줄이기 위해 환자의 위치를 정확히 잡고 본격적인 방사선 쬐기를 시작한다. 치료 도중에 종양의 크기 변화를 내장된 CT로 확인한다."
Q. 암이 전이됐거나 재발한 경우 방사선 치료는 유용한가.
"암 가운데 전이하지 않고 재발도 많지 않은 걸 양성암이라고 한다. 악성암은 그 반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악성이나 재발한 암이라도 국소적인 경우라면 방사선 치료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이된 암에선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를 모두 소멸시키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통증이 생기거나 척추 전이로 팔다리가 마비됐을 때 방사선 치료는 효과적으로 증상을 없애고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Q. 암 환자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던데.
"전이나 재발암 환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통증이다. 일시적으로 진통제만 쓰기보다 토모테라피를 활용하면 좀더 효과적으로 통증을 관리할 수 있다. 연세의료원 토모테라피센터는 최근 심한 통증을 호소한 다발성 골 전이 환자 21명 가운데 76.2%인 16명에서 토모테라피 후 통증이 현저히 줄었음을 확인했다. 몸 안에 복잡하게 퍼져 있는 다양한 크기의 암세포에 정확하게 방사선을 쬐면서 주변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는 토모테라피의 장점 덕분이다."
Q. 건강보험급여항목에 포함되나.
"지금까지 토모테라피는 비급여항목으로 분류돼 환자가 1,500만~2,50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달부터 두경부암과 전립선암, 뇌종양, 척추종양, 방사선 치료 부위 재발암 등 5개 암 치료 분야의 토모테라피는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됐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350만~400만원으로 4분의 1가량 줄었다. 앞으로 몸 속 깊이 생겼거나 중요 기관에 싸여 있어 수술이 어려운 암 환자들이 토모테라피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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