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에 단 10분이라도 최선 다해 놀아주세요
조현상(34ㆍ우리은행 근무)씨 집에는 엄마가 산 아이들 옷이 한 벌도 없다. 36개월짜리 아들과 19개월 된 딸의 옷을 고르고 사오고 입히는 일 모두 아빠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학원까지 다닌 그는 수시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주고, 공연장 박물관 체험학습장 등을 쉴새 없이 아이들과 탐험하고 다닌다. 인터넷 블로그 '열혈대디의 좌우충돌 육아일기'(http://blog.naver.com/windchoco)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그는 최근에는 아예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오후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고 이틀에 하루 꼴로 쉬는 야간업무를 자청했다. 다양한 육아서적을 통해 쌓은 단단한 이론까지, 아내 남원경(34)씨가 "살짝 피곤하다"고 할 정도다.
이 '고수아빠'가 아이를 다루고 놀아주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는 '왕초보 아빠'를 만났다. 14개월짜리 아들을 둔 최윤웅(35ㆍ메트라이프생명보험 근무)씨. 아빠 육아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멘티가 묻고 멘토가 답했다.
Q. 육아가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아빠로서 누릴 수 있는 2인자의 안락함을 포기하기가 어렵다.
A. 아이들이 엄마의 닮지 말았으면 하는 점을 꼭 닮아 있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웃음) 육아를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당신 닮아 애가 저렇지' 부부끼리 싸우기 쉽다. 아이들은 4,5세까지 거짓이란 개념이 없다. 아이들한테 "밥 먹으면 장난감 사줄게" 같은 허언을 자주 하다 보면 아이가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회적 규약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부모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보고 따라하며 자라야 한다. 부모에게서 양성성을 모두 배운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서도 성공한다. 성공한 여성 CEO의 대부분은 육아에 적극적인 아버지로부터 리더십을 익혔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Q. 차라리 갓난아기였을 때는 안아주기만 하면 되니 쉬었다. 이제 돌이 지나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니 고집불통에 말도 안 듣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A.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자존감을 키워줘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가급적 다 들어주는 게 좋다. 갈등이 생길 때는 아이를 설득하고 아이와 의논해야 한다. 저렇게 어린 애랑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도 아이들은 다 이해한다. 큰애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놓고 동생과 다툴 때 너는 오빠니까 무조건 양보하라고 하지 않았다. 큰애 입장에서는 나도 애기인데, 사랑을 빼앗겼다, 존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애를 울리자 결정하고, 큰애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작은애한테 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 설득하고 의견을 물었다. 허락할 때까지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를 존중해주면 점점 허락의 시간이 짧아지고, 자발적으로 동생을 아끼고 양보하고 보살펴준다.
Q. 회사일이 바빠 아이와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아이를 처가에 맡겨놓고 주중 한두 번 정도만 만나다 보니 오히려 외삼촌을 더 따를 정도다.
A. 중요한 건 놀아주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아이들은 이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진심으로 놀아주는지 귀신같이 안다. 조금만 건성으로 놀아줘도 곧바로 칭얼거리지 않나. 하지만 일주일에 단 10분이라도 집중적으로 최선을 다해 놀아주면, 아이는 다음 일주일을 거뜬히 기다려낸다.
Q. 남자와 여자의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엄마 중심으로 육아가 진행되고 있다 보니 이제 와서 개입하기도 힘들고 점점 소외되는 느낌이다.
A. 이제라도 조금씩 끼어들면 된다. 여자들은 주변에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무수한 정보들을 접하고 그에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가사일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남자들보다 육아에 있어 시간에 더 많이 쫓긴다. 반면 남자들은 듣는 정보도 워낙 적고, 태생적으로 분석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어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만 한다면, 최고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육아를 아예 아내에게 맡겨놓으니까 비싼 교재 산다고 하면 인상만 찌푸리는 것이다.
Q. 공동육아라고 해도 아내 곁에서 육아를 돕는 수준이지 혼자서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건 잘 못하겠더라. 두렵기도 하고.
A. 막상 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다들 할 생각을 안 하니까 그렇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된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올 때 아내가 짜증낸다면 그건 아내에게 육아의 숨통을 안 틔워줬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무 걱정 없이 외출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면, 나의 사교생활도 편안해진다.
Q. 고수아빠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은 뭘까.
A. 일단 아이와 친해져라, 그리고 관심을 가져라. 이게 끝이다. 자기 아이는 누구보다도 부모가 가장 잘 알아야 하고 가장 친해야 한다. 조기교육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는 후배가 어느 날 전화를 해왔다. 아이가 물건을 통에 집어넣으며 던지는 모습을 보고 이웃 아이엄마가 애가 너무 폭력적인 것 같으니 미술치료를 받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 같으면 '사내아이들은 다 그래' 했을 텐데 이 친구는 그렇게 사교육은 시키면서도 자기 아이를 잘 모르고, 못 믿고 있었다. 아빠와 아이의 애착관계가 강하게 형성되면 서로간에 믿음이 생긴다. 솔직히 그 애착이 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웃음)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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