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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치자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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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치자꽃 당신

입력
2011.07.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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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당신께서 좋아하는 치자나무 꽃향기 그윽합니다. 그 꽃내음 재스민 향기 비슷하지만 치자나무 꽃향기엔 늘 비 그친 7월 새벽의 상큼함이 더해져 있어 좋습니다. 치자나무 하얀 꽃은 장마를 알리는 꽃이라 한다지요. 장마가 시작될 때 피어 장마가 끝날 때 진다고 한다지요.

그래서 당신의 삶에도 저의 운명에도 눈물이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젊은 나이로 길 위에서 덧없이 세상 떠나시고 여기까지 와 피운 당신의 치자꽃을 바라보면 삼천 배 삼만 배의 오체투지로도 턱없이 부족한 자비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어리석어 삶의 구비를 돌다 수시로 뚝, 뚝 관절 부러질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분은 당신입니다.

두 번의 뇌수술에도 기도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말라리아 열병에 사경 헤맬 때도 기도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유서를 쓰듯 기록한 시마다 배어나는 그 핏물 다 닦아내며 기도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당신의 향기 속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시 걸었습니다.

해마다 당신과 손잡고 치자꽃 향기를 맡았습니다. 당신께서 차려주시는 찰밥과 미역국을 받아먹으며 다음 생에는 제가 당신을 꽃으로 피우는 나무이고 싶습니다. 해마다 새 향기 새 꽃 피우는 치자나무이고 싶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제가 태어난 날 아니라 당신이 저를 낳아 길러주신 은혜로운 날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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