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서울 성북구청 1층 문화홀. 조용하던 전시 공간이 갑자기 북적거렸다. 20여 명의 섬마을 학생들이 '점령'한 것이다. 전남 완도군 청산중 사진반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학생들은'슬로시티, 청산도 보다 더 아름답다'는 주제로 열리는 포토에세이전을 준비하기 위해 속속 모여 들었다.
전시회 오픈 시간이 다가오자 한 쪽에서 작품들을 배치하고 사진 옆에 걸릴 에세이를 챙기고 있던 인솔 교사 홍진선(46)씨의 손길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사진작가로 서울에서 목회 일을 하던 홍씨는 원래 대안학교 설립이 꿈이었다. 그러던 중 사진을 찍기 위해 2년전 청산도에 갔다가 섬들이 무인도가 되고 여러 학교들이 폐교되는 현실을 목격한 뒤 마음을 바꿨다. 학교 하나를 더 만드는 것보다 있는 학교를 '사수'하는데 일조하자고 결심했다. 고민끝에 청산도에 사는 지인 자녀가 다니는 청산중 학생들을 위해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방과후 학교 교사를 자처한 것이다. 홍씨의 뜻을 전해 들은 정연국 청산중 교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서울에 사는 지인들은 자신들의 카메라를 내어주며 도왔다.
홍씨가 대면한 섬 소년들은 도시 아이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경쟁에 조금 덜 치였을 뿐 게임과 인터넷 서핑에 매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섬을 고립된 곳으로 느끼고 갑갑해 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섬 아이들에게 사진 수업에 앞서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먼저 줬다. 시를 가르치고 음악을 듣게 했다. 사진촬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글도 함께 쓰게 했다. 학생들은 조금씩 자신이 디디고 있는 땅, 청산도를 응시하게 됐다.
"이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담벼락 하나, 돌 하나도 피사체가 될 수 있으니 관심을 갖고 보더라고요." 홍씨의 설명이다.
학생들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 녹아 있던 고갯길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다시 담았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며 지도에도 없는 길을 겁도 없이 갔다. 일출을 찍기 위해 홍씨 집에 합숙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걱정하던 학부모들은 이젠 든든한 후원자다. 처음에는 달과 별을 찍겠다며 밤 12시에도 산으로 바다로 나가는 아이들이 탐탁지 않았다. 1년에 200시간이나 하는 사진 수업이 성적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사진을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긴 아이들의 표정이 부모들의 마음을 돌렸다. 게임 대신 사진을 찍게 된 이후 성적도 올랐다.
특별한 꿈이 없던 김수영(15) 군은 사진작가를 꿈꾸고 있다. 올해 서울영상고에 진학한 임다빈 양은 사진에서 얻은 감각을 애니메이션 전문가로 발전시켜보겠다는 각오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덕분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