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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헤어 드레서',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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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헤어 드레서',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하리라

입력
2011.07.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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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외롭다. 남편은 자신의 친구와 눈이 맞았고, 자신은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 몸은 이미 성인인 고교생 딸은 엄마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몸집은 단번에 눈에 띌 정도로 거대하다. 등 뒤 지퍼를 내릴 수 없어 귀가길 전철에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미리 지퍼를 내려달라 부탁하는 것은 그나마 약과다.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끈을 잡고 낑낑대야 가능하다.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직업도 없다. 거주하는 낡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그녀를 조롱하듯 매번 고장이다. 뒤뚱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보자면 관객마저도 숨이 차다.

가진 것이라곤 누구나 기를 쓰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가난과 외로움과 살뿐이다. 하지만 이 여자 카티(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마이데), 언제나 싱글벙글이다. 징징대며 현실을 비관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그는 항상 꿈을 꾸고 세상을 낙관하며 젊음을 유지한다.

그런 그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상황이 닥친다. 취업 센터의 소개로 찾아간 미용실 원장은 무조건 채용 약속을 어기고 카티를 돌려 보내려 한다. "헤어 드레서는 아름다움을 다루는 직업인데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카티는 항변해보지만 원장은 막무가내다. 카티는 복수를 위해 미용실 맞은 편에 자신만의 미용실을 차리려 하지만 돈 없는 이혼녀에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미용실 개업을 위해 카티는 베트남인 밀입국에 가담하는 등 악전고투를 거치게 된다.

편견이라는 화두를 쥔 이 영화는 쓸쓸하고 씁쓸한 면을 지녔다. 누구에게도 환대 받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편견을 지니지 않은 카티의 사연 하나 하나가 주는 메시지도 간단치 않다. 남편 없고 뚱뚱한데다 동독 출신이라는 이유로 환영 받지 못하는 카티의 처지를 대하며 많은 관객들은 가슴이 뜨끔해질 듯하다. 카티를 차별하는 인물들은 우리의 숨은 자화상이 아닐까.

우울하고 교훈적 장면들로 가득 찰 만도 한데 이 영화의 화법은 카티를 닮았다. 우연찮게 베트남인들과 좁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이 참 유쾌하다. 힘겹게 인생이라는 산을 넘어가면서도 매일 즐겁다고 말하는 카티의 모습은 이 영화의 최대 미덕.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삶이 풍요로워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다 생각하니까 행복한 것이라고.

'파니 핑크'와 '내 남자의 유통기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도리스 되리가 연출했다. 한국에도 고정 팬 층을 지닌 이 감독은 전작들처럼 여전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궁상 맞을 만한 이야기들에 활력을 불어넣는 연출은 여전하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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