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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홍 대표, 말수부터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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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홍 대표, 말수부터 줄여야

입력
2011.07.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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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말로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는 변론술과 수사학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대표적 세객(說客)인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입에서 나온 합종(合從)ㆍ연횡(連衡)이 열국의 운명을 갈랐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 민주정에서 조리와 설득력 있는 말 솜씨는 정치가의 기본 요건이었다.

그러나 세상 변화에서 말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자신의 뜻을 알릴 다른 전파수단이 없거나 부족했을 때 말은 한껏 위력을 발휘했지만, 기술 진보로 다른 전파수단이 속속 등장하면서 말의 힘은 많이 떨어졌다. 대신 곳곳에 남았다가 순식간에 전파되는 디지털 영상ㆍ음성 기록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책임을 말에 요구한다.

다변의 정치는 저물어 가고

과거에도 활자는 물론, 영상ㆍ음성 기록은 있었지만 신속한 확인과 전파가 어려운 아날로그 기록의 특성상 여전히 당사자의 말이 중요했다. 악착같이 과거 기록을 뒤지는 사람이 드물었고, 설사 힘겹게 찾아내 느리게 전파해도 기억의 '선택적 유지(Selective Retention)'나 인식의 '확인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체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이와 달리 최신의 동시대량 전달수단에 올라탄 디지털 기록, 특히 영상은 인간의 감각 가운데 착각에 가장 약하다는 시각을 직접 자극, '선택'이나 '확인' 자체까지 흔든다. 해묵은 가치였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언행일치를 기술발전이 강제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 지도자에게 능숙한 말솜씨보다는 신중한 언행을 요구한다.

대표적 예가 지난 20년 간 일본의 역대 총리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다. 그의 정치적 성공에는 특유의 '언력(言力)'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언력'하면 뛰어난 언변을 떠올리기 쉽지만, 리쓰메이칸대 아즈마 쇼지 교수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적은 말수와 간결한 어법이 그의 언력의 원천이다.

실은 한국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 달변의 정치는 생명력을 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변은 긍정적 효과보다 화(禍)를 부르기 일쑤였고, 여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아낌으로써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누구나 말이 많다 보면 실수하거나 앞뒤가 다를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려는 전략적 태도는 정치 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한다.

한나라당 7ㆍ4 전당대회에서 낙승한 홍준표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선전하고, 대선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나아가 대선에서 야당과 '전쟁'을 제대로 치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것도 다름아닌 달변ㆍ다변 체질의 극복이다. 검사 경력에서도 짐작됐듯, 정계 입문 후 그는 타고난 말의 힘을 적잖이 과시했다. 만만찮은 대중적 인기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로 속을 시원하게 하면서도 크게 조리에 어긋난 말이 없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거대여당 대표의 말은 여당 내 '외로운 늑대'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엄격한 잣대의 적용을 받게 마련이다. 그가 보여온 노선ㆍ이념이나 탈 계보 정치 성향 등은 '관리형 대표'에는 오히려 잘 어울리는 자산이지만, 언변만큼은 부정적 요소다. 벌써부터 친 서민 정책이나 포퓰리즘 등에 대한 그의 말에서 태도의 일관성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눌변의 행동이 빛을 발한다

취임 직후 '박근혜 대세론'에 언급한 것이야 별 문제가 아니지만, 가정적 '방해 공작'을 언급한 것은 섣불렀다. "계파 활동 때는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발언으로 다른 최고위원과 신경전을 벌인 것도 경솔했다. 그는 달리 믿겠지만, 전당대회 승리 자체가 친박계의 힘에 의한 것이든, 친이계 소장파의 '조반(造反)'의 결과든, 결국 계파정치의 틀 안에서 가능했던 결과였다면, 더더욱 말을 앞세우기보다 구체적 실행으로 보이는 게 나았다. 그럴 시간과 활동 공간도 이제는 넉넉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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