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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천 청풍호 북쪽 호안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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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천 청풍호 북쪽 호안 트레킹

입력
2011.07.0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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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 한번 걸었더니 사람이 귀한 줄 알겠더라

"수영엄마는 아들네 갔나 봐유. 집이 비었네." 쇠고기 한 근과 소주 두 병 들고 옛 이웃이 사는 집으로 갔던 안골댁이 되돌아온다. 볼이 두꺼운 조선낫을 들고 어머니 산소에 코를 박고 있던 바깥양반 유춘광(71)씨가 땀을 닦으며 타박한다. "뭐 하러 다시 들고 와? 옆집 윤씨 주면 되지." "아따, 이 양반이. 그 집도 사람이 없어유." "…" 고향마을 정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노부부가 말이 없다. 여기는 충북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黃石里). 청풍호에 우묵하게 패인 대덕산 골짜기에 앉은 소담한 마을이다. 주민은 여섯 가구 일곱 명이고 버스는 하루 세 번 들어온다.

청풍호 북쪽, 희미해지는 사람의 풍경

청풍호 북쪽 호안은 거친 길이다. 제천시 금성면에서 충주시 동량면으로 이어지는 532번 지방도가 마을들을 가로지르지만, 집들이 오종종 모여 있는 두어 곳만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나머지는 자갈길 아니면 황톳길. 82번 지방도와 만나는 금성면사무소에서 충주호리조트가 있는 동량면 하천리까지 41km 가운데 60% 이상이 험한 비포장길이다. 길을 물으면 주민들은 "선거 때 ○○○가 분명히 길을 닦아 준다고 해 놓고선!" 하고 불평부터 터뜨린다. 얼굴을 바꿔가며 20여년째 되풀이되는 공약(空約). 죄송한 말씀이지만, 덕분에 트레킹이나 산악자전거 꾼들엔 최고의 길로 남았다.

금성면사무소에서 황석리까지는 12km 비포장길이다. 자동차가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걷기로 했다. 장마로 흙이 물컹해져 간간이 발목이 꺾이는 두 시간 반의 자갈길. 내리고 오르는 고갯길에 옷은 금세 축축해지고 성가신 날벌레가 관자놀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타박타박 걷는 것은 왼쪽 발 아래로 펼쳐진 청풍호의 부신 물빛, 오른쪽 어깨를 감싸는 여름 숲의 심록(深綠)을 한껏 들이키고 싶어서다. 청풍호에 잠긴 옛 마을 이야기를 주워 듣고픈 바람도 있다.

그 속을 알았을까. 땀에 절어 황석리 어귀로 들어서는 꼴을 보더니 묘를 다듬던 유씨가 손짓으로 부른다. 그리고 얼린 요구르트를 하나 주며 끌러 놓는 이야기 보따리.

"여기랑 요 옆에 후산리는 첨서부터 유서방네 마을이었어. 우리 문화 유씨 집성촌이지. 내가 칠십이 됐는데도 이 동네 오면 막내가 돼. 촌수(항렬)가 젤 낮거든. 수몰? 그래, 맞아. 원래 황석리는 여기가 아니라 물에 잠긴 저 아래쪽이지. 그땐 한 300가구 살았는데 지금은 이리 쪼그라들었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서늘해. 원래 여기는 치맛골이라고 부르던 골짜기인데…."

수몰되기 전의 황석리는 대추, 참외가 실하게 나는 농촌이었다. 냄비나 화로를 만드는 곱돌도 생산했다고 한다. 1960년대엔 석기 시대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하지만 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절매, 법개, 방우, 후산, 사오, 방흥, 진목, 오산 등 인근 마을과 함께 물에 잠겼다. 대부분의 황석리 주민은 타지로 떠나고 일부가 산등성이에 작은 마을 몇 개를 새로 지었는데, 종손이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고 종중 재실(齋室)을 옮겨오면서 이곳이 황석리라는 이름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나도 한 60년 전에 어른들한테 들은 거라 가물가물한데… 요기 물 옆으로 뾰족이 나온 데가 토시골, 고 밑에가 삽작골, 삽작골 아래 600년쯤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누르 황자 쓰는 황씨들이 살았어. 근데 그곳 자기네 선산에다 황씨들이 한 길 반이나 되는 묘비를 세웠어. 옛 어른들 말씀이, 그걸 앞으로 쓰러뜨리면 그쪽 여자들이 다 바람이 나고, 뒤로 쓰러뜨리면 이쪽 여자들이 다 바람이 난다는 거야. 그래서 여길 황석리라 부르게 된 거지."

유씨 부부가 못 만나고 가는 수영엄마는 '수영이 엄마'가 아니라 의붓어미를 뜻하는 충청도 사투리다. 올해 마흔한 살 된 유씨의 둘째 아들이 갓난아기 때 병이 났는데, 용하다는 점쟁이가 대모(代母)를 두라고 해서 옆집에 부탁했단다. 유씨네는 35년 전 일찌감치 황석리를 떠났고 10년 후엔 마을이 수몰돼 그때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유씨 부부는 성묘하러 올 때마다 수영엄마를 만나 기억을 되살려 보려 애쓴다. 수영엄마는 마지막 남은 고향 이웃이다. 이 땅의 다른 많은 수몰지처럼, 황석리도 숱한 전설과 함께 망각에 잠겨 가고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숲과 물, 인심을 만나는 길

황석리를 지나 얼마 안 가 나오는 후산리부터 부산리까지 4km 남짓은 아스팔트 도로이고, 이후 20km 가까이 다시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특히 부산리부터 충주시와 경계를 맞댄 진목리에 이르는 11km 가량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숲과 호수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멀리서 보면 온통 푸른 색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개망초, 명아주, 기린꽃, 나리, 비름, 양지꽃, 돌꽃 등등이 원색의 꽃술을 살며시 내밀고 있는 것?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 고요한 호수의 푸른 빛이 깔려 있다.

황석리가 청풍호반의 짓수굿한 아름다움을 품은 마을이라면, 이 구간은 청풍호반의 활연한 멋을 펼쳐놓은 길. 하지만 걸어서 이 구간을 걸을 요량이라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네댓 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중간에 낚시터가 몇 군데 있을 뿐, 인가도 가게도 찾기 힘들다. 집이 한 채밖에 없는 진목리를 지나는데 콩밭에서 일하던 황원길(60)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고모가 진목리의 유일한 주민이라며 깨농사, 콩농사 얘기를 늘어놓더니 머뭇머뭇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근데 담배는 안 피우세유? 여긴 데후(4륜구동 장치의 일본말) 없는 차는 들어오기 힘들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없는데… 담배 챙겨 온다는 걸 깜빡했지 뭐유. 오늘은 자전거 타는 사람도 통 안 보이네유."

관광단지, 펜션, 호텔, 가든, 리조트, 방송사 촬영장이 줄줄이 네온사인 간판을 잇대고 있는 청풍호 남쪽 호안과 달리 북쪽 호안은 호젓하기 그지없다. 밤이면 호수 남쪽은 번쩍이고 북쪽은 침묵에 잠기는데, 임진강을 가운데 둔 두 공화국의 대비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 조용한 길에서 머지않은 곳에 평택-제천 고속도로를 뚫는 건설 중장비의 소음이 낭자하다. 동네가 관광지로 개발되는 걸 바라냐고 묻자 장선리 사는 예순 다섯 살 아주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엔 열두 장선이라고 해서 여기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유. 내가 시집올 때만 해도 7반까지 있었는데 이제 4반만 남았데요. 저 아래가 물에 잠기고부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떠났지. 안개가 많아져서 그런지 예전엔 없던 벌레도 많고… 농사 짓기가 전만 못해요. 하지만 난 여기서 이래 농사 짓고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유, 저 아래 사람들 인심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흔 살 시어머니와 일흔 살 남편, 새엄마와 함께 사는 게 싫어 할머니한테 온 열네 살 손녀딸까지 네 식구 먹을 것만 있으면 된다는 아주머니의 순박한 웃음에 옥녀봉을 넘어 온 저녁 노을이 번졌다. 며칠 넉넉히 내린 비로 아주머니의 콩밭과 고추밭에 불그스름한 윤기가 돌았다. 지친 다리를 끌고 차를 세워둔 곳까지 갈 길이 막막했지만 마음은 급하지 않았다.

제천=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천길 낭떠러지에 걸린 정방사

제천 정방사는 충주댐이 생긴 뒤 엉겁결에 천혜의 전망대가 된 사찰이다. 첩첩의 산에 싸인 청풍호의 파노라마를 굽어보고 싶다면 정방사 원통보전 앞마당이 제일이다. 금수산(1,016m)에서 뻗어 나온 신선봉(845m) 자락, 천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정방사는 본디 법당 지붕을 3분의 1이나 덮고 있는 암벽의 장관으로 유명한 절이었다. 하지만 이젠 짙은 물안개 너머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호수의 빼어난 풍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 틈에 끼어 눈 호사를 즐기고 있으면, 이 절집의 주불(主佛)로 들어앉아 있는 키 작은 관세음보살상도 호수를 보고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허튼 생각이 든다.

기록에는 절의 유래가 이렇게 전해진다.‘신라 때 의상 대사의 제자 중에 정원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세상 여기저기를 둘러본 그는 세속풍경을 늘 동경하고 속으로 근심하며 지냈다… 부처가 있는 곳에 백성이 있어야 하고, 그 백성 속에서 부처가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 즉 불법은 세속 교화에 있고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사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대사는 지팡이를 정원에게 주며 지팡이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그 곳 아래 마을 윤씨를 찾아가면 그 뜻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정원의 정(淨)자를 따고 경관이 아름답다 하여 방(芳)자를 따서 정방사를 지었다고 한다.’

7세기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와 민중을 가슴에 품었던 젊은 승려, 그리고 지방 호족의 스폰서십에 의한-당시로서는 대공사였을-사원 건립을 연결시키는 논리적 고리를 안내판에 적힌 이 앙상한 창건 연기만으론 읽어낼 수 없었다. 서풍에 밀려 육박해오는 안개를 받고 있자니, 굳이 그걸 찾아 꿰 맞추려는 것도 결국은 미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법당 뒤편에 걸린 주련의 글귀가 분별과 시비, 그리고 아집에 젖은 마음을 나무라는 것도 같았다.

‘높음이 하늘보다 높은 것 없으나 도리어 밑으로 돌아가고, 맑은 물보다 더 맑은 것 없으나 깊으니 도리어 검도다(高無高天還返底, 淡無淡水深還墨).’

장쾌한 스케일의 파노라마에 묻혀 쉬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절에는 독특한 게 하나 있다. 법당인 원통보전 옆구리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다. 본디 열 장으로 이뤄진 그림 가운데 다섯 번째 ‘목우(牧牛)’와 여섯 번째 ‘기우귀가(騎牛歸家)’ 달랑 두 장만 있는 것도 이채롭고, 그 둘마저 심히 비대칭으로 그려 놓은 게 흥미롭다. 특히 여닫을 수 있는 문짝에다 ‘기우귀가’를 큼지막하게 도배해 놓고 문고리까지 떡 하니 만들어 붙여 놓은 것은 호방한 일탈의 미를 느끼게 한다. 궁금증이 일어 주지인 상인 스님께 에둘러 여쭸으나, 부임한 지 보름밖에 안 된 스님도 아직 그 연유를 모르는 듯했다.

여름철 정방사는 가족과 함께 청풍호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한나절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절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계곡과 여러 번 교차하는데, 수심이 깊지 않고 울울한 숲에 가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한여름에도 물이 차갑게 맑다. 금수산뿐 아니라 망덕봉(926m), 미인봉(596m) 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잘 닦여 있다.

제천=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공식 이름은 충주호… "댐 생기기 전엔 물 반 고기 반"

청풍호는 1985년 10월 충북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 남한강 물길에 높이 97.5m의 콘크리트 댐을 세워 생긴 호수다. 저수량 27억 5,000톤으로 남한에서 소양호(29억톤) 다음으로 크다. 조선시대까지 서울과 영남 내륙을 잇는 조운(漕運)의 중심지였으나, 이제 물의 흐름은 멎고 행락객을 태운 유람선이 떠 있는 관광지가 됐다.

나라에서 붙인 공식 이름은 충주호다. 댐이 위치한 곳의 지명을 호수 이름으로 삼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제천 사람들은 제천시 청풍면이 더 많이 수몰된 까닭에 청풍호라는 이름을 고집한다. 외지인도 청풍호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편이다. 청풍면 29개 마을 가운데 27개가 물에 잠겼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의 숫자는 1만 8,700에 달했다.

고려와 조선의 많은 문화재와 유적도 수몰됐는데, 그 중 일부는 망월산 기슭에 만든 청풍문화재단지에 옮겨졌다. 밀양 영남루, 남원 광원루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누각으로 꼽히는 한벽루(보물 제528호)도 여기에 옮겨 세웠다.

지금도 낚시꾼들이 사철 몰려들지만 댐이 생겨 물이 탁해지기 전엔 정말 물 반 고기 반이었다고 한다. 호수로 흘러드는 제천천 하류에서 만난 박재영(62)씨는 "여기처럼 고기가 끓는 곳이 나라에 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향 얘기를 묻는 말에 신이 나 말을 이었다.

"여 물 속이 내 고향이거든요. 물에 잠기기 전엔 만천리라고도 하고 만내라고도 했어요. 봉양 도랑하고 제천 도랑이 합쳐지는 곳인데, 모래 속에 사는 쌀미꾸라지 같은 거 정말 대단했어. 오리그물 한 번 쳤다 하면 한 세숫대야야. 쏘가리도 그냥 작살로 잡을 수 있었는데 말이지…."

제천=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청풍호

청풍호는 1980년대부터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라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 시설이 호수 남쪽에 몰려 있기 때문에 북쪽 호안 트레킹에 나서려면 이정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에서 빠져 나와 우회전하면 곧 트레킹 출발지인 금성면사무소에 닿을 수 있다. 기차나 버스로 갈 경우 제천 시내에서 금성면 방면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시간 문의 제천운수 (043)646-2955, 제천교통 (043)643-8601.

반나절 트레킹 코스로는 금성면사무소에서 후산리까지 14km 정도가 적당하다. 후산리에서 제천 시내로 돌아오는 버스가 하루 네 번 있다. 금성면사무소에서 충주호리조트까지 41km를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음식과 마실 물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중간에 식당이나 가게를 찾기 힘들다. 충주호리조트에서는 충주나 제천 시내, 봉양읍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비교적 자주 있다.

정방사는 제천 시내에서 82번 지방도를 따라 단양 방면으로 가는 길에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충주IC,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남제천IC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제천 시내에서 정방사를 거쳐 상천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세 번 있다. 정방사 (043)647-7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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