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아파트 리모델링 과정에서 층수를 높이고 가구 수를 늘려달라(수직증축)는 분당, 일산, 평촌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주민들과 건설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사실상 결론을 내렸다.
현재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단지는 180여곳, 12만9,000가구에 달한다. 이들 단지의 상당수가 수직증축을 강력 요구해온 만큼, 정부의 불허 결정은 주민들의 반발 초래와 함께 리모델링 시장을 크게 위축시키는 등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6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8,9차례에 걸쳐 건축ㆍ시공ㆍ구조ㆍ법률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리모델링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진행한 결과, 공동주택의 수직증축과 가구수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조만간 한두 차례 회의를 더 열고 이달 중 최종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그 동안 1기신도시리모델링연합회와 리모델링 단체, 건설사 등은 수직증축을 허용하고 이를 통해 증가하는 가구수의 10% 이상을 일반분양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국토부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아파트의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모두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수직증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 대부분이 건설 당시 증축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돼 안전성이 우려되는데다, 이를 허용했다가 자칫 대형사고라도 발생하면 그 책임을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또 최근 진행 중인 리모델링이 기존 구조물의 80~90%를 뜯어내는 사실상 재건축의 형태여서 자원 재활용도가 떨어지고, 비용도 일반 재건축 못지 않게 들어 경제성이 낮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여기에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준공 후 15년만 지나면 추진할 수 있는데도 용적률이나 초과이익부담금, 기부채납 같은 제한이 없어 재건축과의 형평성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대신 국민주택기금에서 공사비 일부를 저리 대출하는 등의 리모델링 지원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대규모 리모델링 사업을 준비해온 신도시 주민들은 허탈감 속에 집단행동도 불사할 태세다. 이형욱 1기신도시리모델링연합회 회장은 "구조안전에 이상이 없는 범위에서 수직증축 및 일반분양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연합회는 5일 성명을 통해 "4·27 재보선 공약인 수직증축과 일반분양을 허용해야 한다"며 "정치권의 약속을 지키라는 지역민들의 요구를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건설사들도 허탈해하기는 마찬가지. S건설 관계자는 "베란다 앞뒤로만 면적이 늘어나는 현행 리모델링 설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선 수직증축이 선결과제"라며 "구조보강을 하면 내진기능 등이 더해져 전보다 더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A건설사 관계자는 "건설 분야의 녹색성장을 위해 리모델링 활성화를 강조해 온 정부가 정작 활성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수직증축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수직증축이 허용되지 않으면 신도시 리모델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재건축 기준을 완화하거나 고층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주거환경 개선 방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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