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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첫 연시집 '상화 시편' '내 변방은 어디갔나'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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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첫 연시집 '상화 시편' '내 변방은 어디갔나' 펴내

입력
2011.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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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가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 거야. 이미 15년 전쯤에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갔을 거야."

시인 고은(78)씨에게 부인 이상화(李相華ㆍ64ㆍ중앙대 영어과 교수)씨는 '이상적 꽃'(理想花)과 다름 없는 듯 했다. "내 작품은 아내와의 합작품이다" "(아내와의) 일상의 사소한 티끌 같은 시간의 집적 자체가 감동적이다" "삶에 갈등이 없을 수 없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부부는 무갈등 체제다" 등 때로 진지하고 때로 웃음기 섞인 아내 예찬은 그칠 줄 몰랐다.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옥중 단식으로 몸이 피폐했던 1983년 서울 수유동 안병무 선생 자택에서 이씨와 결혼식을 올린 지 28년.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데 지칠 법도 한 세월이지만 노 시인은 스스럼 없이 "보면 볼수록 더 좋은 걸 어떡해"라며 껄껄 웃었다.

아내에 대한 이 지극한 사랑이 한 권의 시집으로 나왔다. 제목도 부인의 이름을 딴 <상화 시편> (창비 발행). 58년 등단 후 파계와 자살시도 등 허무의 나락에서부터 거리의 투사까지 파란만장한 여정을 걸었던 그의 문학 인생에서 처음 나온 연시(戀詩)집이다.

6일 서울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인간이 한 인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받는 감동을 억제할 수 없어서 이렇게 냈다"고 말했다.

<상화 시편> 은 그가 지난해 4월 <만인보> 를 전 30권으로 완간한 이후 1여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읽은 적이 거의 없었다"는 그는 "불현듯 잃어버린 것을 찾아낸 듯이 이 시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앞서 1980년대에 연시집을 내려다 엄혹한 시절 탓에 아내의 만류로 그만뒀다는 고은씨는 "그 때 냈으면 ( <접시꽃 당신> 의) 도종환 시인 다음은 갔을 것"이라며 농담도 던졌다. "그때 썼다면 상당히 몽환적이었을 거다. '오~ 나의 태양~' 같은 식으로. 아내도 아쉬워할 거다.(웃음)"

그렇다 해도 이번 시집에 담긴 사랑의 온도도 20대의 청춘을 무색케 할 만큼 때로 뜨겁고 격정적이다.'이렇게/ 목청껏 불러대면/ 마침내/ 내 머리 정수리 위에서/ 숨었던 달빛이 기어이 나타난다// 상화야/ 상화야'('호명(呼名)' 중) 등 시집 곳곳에서 부인의 이름을 외치는 시인의 옥타브를 가늠키 힘들다. 서문에서 "아내는 나에게 정신의 삶을 만들어주고 내 후반의 영감을 이끌어주는 영감의 화신이다"고 말한 대로다. 그에게 이상화는 말 그대로 이상화(理想花)인 셈이다.

시집은 28년 전 결혼식의 풍경, 부인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사연 등 부부가 함께 걸어온 일상의 역사도 담고 있다. '수유리 안병무네 집 마당에서/ 초례 마치고/ 한강가에서/ 하룻밤 자고/ 안성 대림동산으로 왔다/ 상화 남편은 얼간이/ 상화는 철부지'('자전거'중) 꽃밭을 형상화한 시집 표지 그림은 고씨가 몇 년 전 부인 생일을 맞아 직접 그린 그림이며 이씨가 남편에게 쓴 시 '어느 별에서 왔을까'도 실렸다. 그는 시집이 사적인 고백으로 들릴 것을 경계한 듯 "인류의 모든 창조적 행위는 사적인 데서 나온다"며 "사를 모독하면 공이 모독 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랑은 사랑의 부족입니다' 와 '아내의 잠' 두 편을 골라 직접 낭송하기도 했다.

고씨는 연시집과 함께 자신의 시적 전통을 잇는 새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발행)도 출간했다.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에서 시인은 변방의 시선으로 중심의 문명을 향해 일갈한다. 그는 "두 시집을 비교할 수는 없다"며 "양 손에 술잔을 들고 어느 것을 마실지 정하지 못하는 모양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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