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해병2사단 총격사건 당시 소초 건물 밖 고가초소 병사들도 당초 범행 대상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고가초소 병사들을 공격하기로 공모했던 정모(20) 이병이 겁을 먹고 포기해 추가 인명피해는 없었다. 정 이병은 총격을 주도한 김민찬(19) 상병과 공모한 혐의로 6일 오전 1시께 긴급 체포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김 상병이 훔친 총기와 탄약으로 2생활관에서 자고 있던 병사들에게 집중적으로 총격을 가할 때, 정 이병은 소초 외곽의 고가(高架)초소에 올라가 2명의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기로 돼 있었다"며 "공중전화부스에서 갑작스런 총격이 벌어지자 초소 경계병이 돌아보며 소리쳤고 놀란 정 이병은 수류탄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말했다. 정 이병이 갖고 있던 수류탄은 김 상병이 훔쳐 전달한 것으로, 이들은 당초 이달 말에 휴가날짜를 맞춰 범행을 저지르기로 했지만 김 상병이 "그 때까지 기다릴 것 없다"고 재촉해 범행을 서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수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2과장은 브리핑에서 "김 상병과 정 이병은 '우리가 구타를 없애 버리자. 함께 사고 치고 탈영하자'며 사전 모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총기와 탄약을 훔친 후 김 상병과 정 이병이 함께 움직인 정황이 포착됐고,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정 이병도 자백했다"며 "정 이병은 스스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김 상병과 가까이 지냈다"고 설명했다. 정 이병은 4월에 해당 부대로 전입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해병2사단 8연대 1대대 해안초소에서는 5년 전에도 구타가 만연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4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이 부대에서 근무한 A(24)씨는 선임들의 욕설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정신분열에 시달렸고 2007년 8월 2층 계단에서 뛰어내려 치료를 받다 전역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A씨가 수원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등록 거부 취소소송에서 "오랜 기간 구타와 욕설로 스트레스를 받은 점이 정신병의 원인으로 인정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 줬다.
총기 및 탄약 부실관리 실태도 확인됐다. 김 상병이 상황실에서 훔친 경계용 실탄 탄통(실탄 75발, 공포탄 2발, 수류탄 4발)은 상근예비역 김모 일병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상병은 무기를 훔친 뒤 상황실 옆 창고에 숨겨 뒀다. 상근예비역은 출퇴근하기 때문에 탄통을 소초 밖 탄약고에 보관하고 소초장(중위)의 확인을 거쳐야 하지만 김 일병은 소초 안에 있는 상황실 간이탄약고에 보관한 채 열쇠도 자신이 벗어 놓은 근무복에 넣어 둬 규정을 위반했다. 때마침 상황실 근무 하사는 탄약고 문을 열어둔 채 자리를 비워 김 상병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또 총격 후 생활관에서 발견된 소주 2병은 김 상병이 사건 전날 해안초소 경계를 서다 1㎞ 떨어진 동네 가게에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됐지만 의혹은 여전히 많다. 부대 안에서 구타가 횡행했다면 김 상병과 정 이병 외에 추가 공범이 더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들 두 병사와 2생활관 안에서 잠을 자다가 숨진 병사들이 서로 다른 분대 소속이었다는 점도 의문이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통상 기수열외나 집단 따돌림은 같은 분대(10명) 안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라며 "분대장이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거나 분대간에 집단적인 갈등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총격 직전 김 상병의 행적도 베일에 싸여 있다. 김 상병이 무기를 훔친 시각은 오전10시~10시20분, 총격을 시작한 시각은 오전11시40분께다. 김 상병은 당시 트레이닝복 차림이어서 총과 탄약을 소지하고 있으면 발각될 위험성이 높은데도 왜 1시간여 동안이나 주저했는지 의문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