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전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다. 따로 블로그를 꾸릴 정도의 수준은 아득히 멀지만, 운전을 하거나 멍하니 있을 때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대학 시절 명동의 '필하모니'나 종로의 '르네상스' 등 고전음악 감상실에도 종종 들렀다. 당시 또래집단 사이에서 잔잔한 유행이었고, 요즘으로 치면 '있어 보이려고'그랬을 성싶다. 감상실 분위기는 왜 그리 심각했던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을 참기 어렵다. 어둑한 공간에 모두들 지긋이 눈을 감고 의자에 파묻혀 잠자듯 하다가도, 귀에 익은 대목에서는 연신 손목이나 고개를 까딱거렸다.
■ 그때나 지금이나 즐겨 듣는 음악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교과서에 이름이 오른 누구나 아는 작곡가들의 작품이다. 다만 그때는 교향곡이 위주였지만, 요즘은 협주곡이나 소나타에 더 많이 끌린다. 어렴풋한 짐작으로는 날이 갈수록 뷔페보다는 정식, 때로는 칼국수나 수제비 등이 좋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온갖 악기가 서로 어울려 조화된 교향곡이 뷔페라면, 중심 악기의 존재가 뚜렷한 협주곡은 한식ㆍ양식ㆍ일식ㆍ중식 등 종목은 달라도 중심 요리가 분명한 정식, 단일 악기의 순수한 소리를 즐길 수 있는 소나타는 단품 요리 같다.
■ 협주곡의 2악장이 들리게 된 것도 큰 변화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이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등 유명한 협주곡들은 하나같이 1악장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다. 그 1악장이 끝나면 저절로 긴장이 풀렸다가 3악장의 현란한 변주에서나 살아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를 듣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관현악단의 협주가 줄어 한결 넓어진 공간에서 피아노 울림은 자유롭고 웅숭깊게 들렸다. 2악장이야말로 작곡가의 표현 욕구가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 협주곡 애호가들에게 1악장에 쏟는 사랑을 조금만 덜어 2악장에 나눠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삶에 대한 자세도 다르지 않다. 인생 여정의 1악장인 '대학과 취업까지'에 너무 많은 관심이 기운 반면 나머지 2악장인 '취업 이후 퇴직까지'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삶의 질과 보람을 좌우하는 이 시기야말로 끊임없는 자기계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게 세상이다. 이 시기가 출신대학에 따라 어느 정도 예정된다는 한국적 현실은 비극이지만, 그 또한 사회 전체가 2악장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서는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우리란 생각이 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