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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등대가 안개에 우는 날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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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등대가 안개에 우는 날이 있어

입력
2011.07.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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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우-, 간절곶 등대에서 무적(霧笛) 소리를 듣습니다. '바다의 눈'인 등대가 짙은 안개에 가려 빛을 잃을 때 무적이 웁니다. 외항선이 울리는 긴 뱃고동이 저음의 베이스라면 등대의 무적은 사람 목소리로는 비유할 수 없는 슬픈 젓대소리 같습니다.

나는 마디마디 날선 그 소리에 눈물의 바닥 밑바닥까지 회오리 치듯 튕겨져 나와 막막해집니다. 1920년 3월에 첫 눈을 밝힌 간절곶 등대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위도 35°21'22", 경도 129°21'46"에서 동해바다의 한 귀퉁이를 지킵니다. 간절곶 등대는 맑은 날 밤에는 15초에 한 번씩 번쩍 섬광(閃光)을 쏟아냅니다.

오늘처럼 안개에 숨어 바다가 우는 날은 등대가 취명(吹鳴)을 울립니다. 등대마다 무적의 고유 주기가 있어 간절곶 등대는 55초마다 5초간 슬프게 웁니다. 그 울음은 불빛처럼 멀리 나가지 못하고 6km쯤 떨어진 바다 위에서 속절없이 끝이 납니다. 등대가 뿌우- 뿌우- 무적을 울리는 목이 긴 한 마리 하얀 바다 동물 같습니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 울음을 뽑아 올리는 고독한 짐승 같습니다.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등대는 쉬지 않고 웁니다. 바다와 등대의 거리(距離)가 안개로 슬픈 날, 내 속에서 덩달아 울리는 취명은 내게 아직 무슨 눈물이 남아 이 아득함에 젖게 하는지 자꾸 아뜩해집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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