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김준규 검찰총장은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도 사퇴했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국회에서 깨진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검찰 조직에 책임지는 모습일 뿐, 국민들 입장에선 무책임한 사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김 총장에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수사권 조정 파문과 관련해 대검찰청 검사장급 참모들까지 전원 사의를 밝히는 상황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겉으로는 "합의가 무시되지 않은 현실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게 검사장들 줄사표의 이유였지만, 그 행간에는 김 총장의 사퇴 촉구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김 총장이 1일 제4차 유엔 세계검찰총장회의 개막식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히면서 "이대로는 조직 관리가 어렵다"고 한 것은 궁지에 몰린 그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김 총장은 4일 "국회 법사위 수정 의결이 있었을 때 이미 (사퇴를) 결심했다"며 "후배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모든 책임은 검찰총장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문제는 과연 누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인가이다. 김 총장은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합의안을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서 일부 수정한 것을 두고 파기라고 볼 수 있는지, 게다가 큰 틀의 변화가 아니라 '법무부령→대통령령' 정도만 바뀐 게 검찰총장이 '직을 걸어야 할' 사유에 해당되는지 상당수 국민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령으로 수사지휘 사항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때 물러나도 될 일"이라며 "조직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국민들에겐 생색내기를 위해 던지는 사표를 책임지는 자세로 보긴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히, 검찰 특유의 조직 문화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검찰 권력이 약화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자, 총장이 사표로써 저항하는 행태는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재근 팀장은 "검찰 권한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며 어떠한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총장 사퇴는 국민들에겐 일종의 협박처럼 느껴질 뿐"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이 수사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조직 이기주의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써 취임 때부터 온갖 구설수에 시달려 왔던 김 총장은 임기 만료를 불과 46일 남긴 채 끝내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다. 2009년 7월 검찰총장 후보자에 지명된 그는 요트와 승마를 즐겼던 취미 덕에 '귀족 검사'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취임 3개월 무렵에는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뽑기 게임'으로 돈 봉투를 돌려 비난을 자초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검찰의 신한은행 수사가 진행되던 도중 일부 기자들에게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처리 방향을 미리 언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숙원 사업이었던 세계검찰총장회의와 대검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잘 마무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던 김 총장의 바람은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돌발사태로 인해 물거품이 됐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이후 취임한 16명 총장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10번째 총장으로 남게 된 것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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