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껏 자야지, 안 들키려면 어쩌겠어."
지난 3일 자정 서울 노원구 하계동 A아파트 경비실. 18시간째 근무 중인 경비원 김모(73)씨는 불 켜진 경비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기자의 인기척에 선잠을 깼다. 150가구를 관리하는 김씨는 아침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6시에 퇴근한다. 휴식 시간이 따로 없어 주민 왕래가 적은 시간에 의자에서 한뎃잠을 청하는 게 전부다. 이렇게 이틀에 한 번씩 24시간을 꼬박 일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92만원. 위궤양 때문에 7년 전 수술대에 올랐던 김씨는 "아직까지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의 근무는 이처럼 거의 예외 없이 24시간 맞교대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용 문제로 제도 개선도 이뤄지지 않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10조는 경비원, 물품감시원, 기계수리원 등을 '감시적ㆍ단속적 근로자(이하 감단직 근로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경비원 같은 감단직 근로자는 육체적 피로나 정신적 긴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근로시간 상한 규제도 없다. 경비원들이 요일이나 명절 구분 없이 1년 내내 24시간 맞교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고령자가 대부분인 경비원의 노동 강도가 결코 낮지 않다는 데 있다. 중계동 B아파트 경비원 박모(73)씨는 24시간 중노동에 시달린다. 순찰이나 차량 단속은 물론이고 누군가 고층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던지거나 무단으로 가구를 버리면 그 뒤처리도 박씨 몫이다. 그는 "자전거가 없어져도, 주차된 차에 문제가 생겨도 주민들은 내게 책임을 물으니 24시간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비원의 인권보호를 위한 노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고용노동부에는 감단직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비정규노동센터가 2004년 발간한 '감시ㆍ단속적 근로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의 98.2%가 24시간 맞교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실태에 대해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혜선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24시간 교대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거의 없다"며 "24시간 맞교대는 신체에 큰 무리가 가서 젊은 사람도 힘이 들 텐데 단순 업무니까 경비원들은 24시간 일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24시간 맞교대제가 없어지는 추세다. 소방방재청은 2008년부터 3교대제(12시간씩 이틀 근무 후 하루 휴식)를 전면 도입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반면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대표적 감단직인 경비원 처우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하종강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3교대제로 전환하려면 경비원을 한 명은 더 고용해야 하는데 사용자는 비용 부담을 이유로 꺼리고, 경비원은 고용 불안 때문에 요구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앞장서 감단직 근로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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