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대바늘은 없어요? 전 대바늘질 잘하는데."
"친환경수세미를 만들 땐 대바늘보다 코바늘이 편하단다."
지난 2일 남학생 20여명이 어색한 손놀림으로 뜨개질을 하던 서울 마포구 대흥동 숭문고등학교 1학년 7반 교실은 이재희(16)군의 엉뚱한 질문에 웃음바다가 됐다. 이날 미션은 아크릴사로 세제가 없어도 기름때 제거가 가능한 친환경수세미 만들기. 완성된 20여개의 수세미는 마포구치매지원센터에 무상기부된다. 이 군은 "환경공부도 재미 있는데, 기부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생태ㆍ나눔봉사' 수업 한 장면이다.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된 숭문고에서는 지난해부터 이 같은 특별한 묶음 봉사활동 프로그램 '따뜻한 봉사활동(따봉)'을 가동 중이다. 기존 봉사활동이 동사무소 청소나 지하철 피켓 캠페인 등 시간 때우기에 그쳤다면, 월 1~2회 여는 '따봉'은 진로와도 연계돼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이 뜨겁다. 입학사정관제 전형 등 입시에서도 유리하다고 하니 일석이조다.
처음 따봉을 기획한 허병두 교사는 "2008년부터 2년 동안 봉사활동 지도교사를 맡았는데, 학생들은 교내 외 청소를 하거나 활동 내용이 불분명한 증명서를 떼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학생들에게 도움도 안되고 교사로서 보람도 없는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고자 각 기관으로 진출한 졸업생을 수소문하고, 서강대 입학처장을 만나 대학생 도우미를 제공받는 등 직접 발로 뛰어 따봉을 완성했다.
그 결과 올해는 유니세프의 세계시민교육과 한국언론문화진흥재단의 신문읽기진흥캠페인, 한국해비타트의 재난민 돕기쉼터 만들기, 여행봉사, 서강대 아루페봉사단과의 연합봉사 등 24개의 봉사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전교생 800여명은 자신이 원하는 반에 속해 1년 동안 기초교육과 실습을 병행한다. 이날만해도 초록교육연대의 환경생태실천반은 천연모기약을 만들어 시설에 기부하기로 했고, 신문읽기진흥반에서는 교내 신문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책으로 하는 봉사활동'처럼 학교 수업과 직결되는 반도 있다. 국어 수행평가에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결말을 창작하도록 하고, 그 중 좋은 내용을 골라 내용을 읽어 주는 봉사활동을 연계한 것이다. 일부는 오디오북으로 제작해 기부도 할 예정이다.
진로교육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날 해비타트 반에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문진호씨가 연사로 나섰는데, 건축가가 꿈인 김춘현(18)군은 "집 짓는 사람은 흔히 '노가다'라고 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해비타트에 관한 설명을 들으니 편견이 사라지고 꿈도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학 중에는 현장답사가 더 활발해 진다. '청소년 여행봉사'반은 1박2일 국내여행 뒤 쓴 기사를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했다. 해비타트반 학생들은 5일 동안 120명이 소규모 주거 단지를 완성하는 작업에 동참한다.
지난 1년 동안 따봉은 세계구호단체 월드투게더를 통해 캄보디아 희망유치원에 장난감 보내기 캠페인을 열었다. 또 유니세프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 한 재학생은 유니세프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허병두 교사는 "피상적 봉사활동을 지속적 봉사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가장 보람 있다"며 "다른 학교로 확산돼 더 많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의 참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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