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태국 총선에서 500개 의석 중 265석을 얻은 푸어타이당 잉럭 친나왓 대표의 승리는 사실상 그의 오빠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승리다.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은 부정부패 원흉과 빈민의 대변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다. 인디펜던트는 "빈민으로부터 얻는 탁신의 인기는 도덕적 결함으로 인해 중산층으로부터 받는 경멸과 맞아떨어진다"고 보도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까지 6번의 선거에서 태국인의 선택을 받았다.
탁신은 선거의 귀재라 불릴만하다. 통신회사를 운영하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3년만에 총리 자리에 올랐다. 집권기간 치러진 4번의 선거에서 모두 이겼고, 심지어 쿠데타로 밀려난 직후 2007년 총선에서도 그의 측근세력이 창당한 국민의 힘(PPP)이 승리했었다.
탁신의 힘의 원천은 '빈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다. 뉴욕타임스는 2일 "태국 빈민들은 탁신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준 최초의 총리로 기억한다"고 보도했다. 2005년 재선 당시 내세웠던 무료에 가까운 의료보장, 부채 탕감, 농가에 대한 지원 등이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지지층이었던 지식인, 종교인이 탁신에게 등을 돌리자 꺼내든 고육지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잉럭도 탁신의 뒤를 이어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하, 노트북 무료 보급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왕정주의자, 군 수뇌부, 엘리트층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은 빈민으로부터 민심을 잃었다. 지난해 레드셔츠(탁신 지지자)의 집회를 군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9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탁신 전 총리는 4일 태국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귀국을 서두르지 않겠다"며 자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방콕포스트는 "푸어타이당의 공약이 실현되지 못하면 잉럭과 유권자의 허니문은 6개월도 안 돼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잉럭 친나왓은 찻타이파타나당 등 4개 군소정당 지도자들을 만나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의석 299석을 확보,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게 됐다. 태국 정치의 큰 변수인 군부는 "선거결과를 수용한다"며 쿠데타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는 선거패배 책임을 지고 민주당 총재직에서 사퇴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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