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성과급을 둘러싼 단순 노사 갈등으로 알려졌던 SC제일은행 파업사태가 국제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서구 언론이 ▦무수익 지점 축소 ▦성과급 도입 등 영국식 금융문화의 한국 이식(移植)을 추진하는 은행 측을 두둔하고 나서자, 대만의 전국은행노조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는 행태를 비판하면서 파업지지 성명을 보내왔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파업 8일째를 맞은 SC제일은행 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금융계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자본과 정서가 비슷한 WSJ는 최근 "이번 파업은 경쟁시스템 도입 확대에 대한 반발이며, 한국 금융의 선진화를 좌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만 은행노조는 2일 라이 완 치 위원장 명의의 연대서신을 통해 "스탠다드차타드는 성과연봉제가 글로벌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시행하려 하지만, 이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대만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을 비롯한 5만2,000명 노조원이 SC제일은행 노조원의 파업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스탠다드차타드 자본이 주장하는 서구식 금융관행의 효율성 여부를 놓고도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집중화된 여신 심사 ▦전면적 성과급 도입 ▦부동산 매각 등이 수익성을 제고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2005년 제일은행 인수 이후 5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작년 말 시장점유율이 5%에 머물고 1인당 순이익(4,923만원)이 신한(1억2,202만원), 하나은행(1억525만원)에 턱없이 모자라는 건 한국 특유의 호봉제 임금구조와 점포식 영업 관행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SC제일은행 고위관계자는 "스탠다드차타드가 진출한 세계 70여개국 중 호봉제를 유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인터넷ㆍ모바일뱅킹이 대중화한만큼 점포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와 경쟁은행들은 영국식 금융관행의 무리한 추진이 저조한 실적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스탠다드차타드가 제일은행 인수 이후 수익성을 이유로 지점을 늘리지 않고, 지점 자율권을 대폭 축소하면서 영업력이 극도로 취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5년간 우리은행(2005년 742개ㆍ2010년 905개) 등 경쟁은행은 지점망을 크게 늘렸으나, SC제일은행(2005년 406개ㆍ2010년 407개)은 답보 상태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27개 지점의 폐쇄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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