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를 갓 졸업한 젊은 조각가가 돌과 나무 등을 쌓아 올렸다. 그의 작품은 거대한 덩어리를 연상시켰다. 작가는 1969년 국전 비구상부문 입선에 이어 1981년 국전 비구상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작품에 반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직접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을 살 정도였다.
그는 자연의 흐름을 조형언어로 새기는데 몰두했다. 돌과 나무, 청동 등을 겹겹이 쌓아 묵직한 무게감을 표현했고, 쌓인 층들이 빚어내는 유려한 곡선이 작품을 감쌌다. 부드러운 두부를 썰어놓은 듯한 청동, 직선과 곡선이 춤추듯 엮인 철근…. 변화하는 자연 안에 숨겨진 규칙을 찾기 위해 덩어리를 끊임없이 변모시키던 작가는 마흔 다섯 살 되던 해의 여름날 가족과 물놀이를 갔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추상조각사에 짙은 흔적을 남긴 고 전국광(1945~1990)의 얘기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그의 20주기를 기려 예술적 성과를 재조명하는 '매스의 내면-전국광을 아십니까'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에는 전 작가의 1980년대 작품인 '매스(Mass)의 내면' 시리즈 중 미공개작 3점을 비롯해 조각, 드로잉, 육필 원고 등 100여점이 나왔다.
전시는 덩어리에 천착했던 작가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1970년대 '적(積)' 시리즈부터 작가는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쌓아 올리거나 모은 뒤 구체적인 매스를 만들어냈다. 이후 작업인 '매스의 내면' 시리즈는 규칙에 따라 쌓은 물질적인 중량감을 넘어 매스의 성질과 결을 이해하려는 집요한 과정의 결과물이다. 작품들은 한층 가볍고 자유로워졌다. 드로잉 작품도 나왔다. 버려진 나뭇가지, 노끈, 철사, 실, 종이 등 다양한 재료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업들이 대자연의 질서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작가의 고민을 드러낸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조각가로 꼽을 수 있는 전국광이 너무도 빨리 잊혀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조각이 점차 소외 장르가 되고 젊은 작가들이 까다롭고 육체적으로 힘든 전통조각을 꺼리고 있는 현실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했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전시는 내달 7일까지. (02)737-7650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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