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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국경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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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국경의 밤

입력
2011.07.0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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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파인(巴人) 김동환의 장편 서사시 (1925)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3부 72장에 이르는 이 서사시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두만강을 넘나들며 밀수 등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망국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당시 소금 등을 만주에 밀수해 먹고 살았던 국경주변 사람에게 두만강은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하는 사선이었다.

풍요한 압록·두만강변 중국도시

지난 주 두만강과 압록강의 중국 쪽 변경을 따라 답사여행을 하면서 여러 날'국경의 밤'을 보냈다. 지금도 강폭이 좁은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는 밀수와 탈북의 통로로 이용되는 긴장의 공간이다. 그러나 어딜 가나 고층빌딩을 짓는 타워크레인이 즐비한 중국 쪽 국경 도시들의 밤은 평화롭고 풍요하기만 했다.

광개토왕비, 장군총, 환도산성 등 고구려 유적이 널려 있는 지안(集安)시의 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녁 식사 전에 잠시 들른 공원 광장에서는 할머니들이 줄을 지어 북과 피리 소리에 맞춰 중국 전통춤 용걸을 췄다. 다른 쪽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배우는 중이었다. 가사는 한국어인데 간간이 중국어가 섞였고, 춤사위는 한국 전통 춤에 가까웠다.

북ㆍ중 합작 식당 '묘향산'에서 1시간 가량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공원에 들렀을 때도 공원 광장은 여전히 춤판이었다. 수많은 남녀 쌍이 어울려 지루박을 췄다. 가족 단위로 제기차기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중국 내에서는 북ㆍ중 국경 지역의 발전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미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음악과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한 광장을 뒤로 하고 동행들과 압록강변 산책에 나섰다. 강 건너 북한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잠들지 못한 밤 새들이 뒤척이듯 울기도 했다. 강 건너는 지안시와 철도로 연결되는 북한의 자강도 만포시다. 산모퉁이에 자리잡은 마을에서 희미한 불빛 몇 개만 흘러 나왔지만 꼭대기까지 뙈기 밭으로 개간된 건너편 산자락은 그믐밤이어도 훤했다. 이쪽 지안시의 휘황한 불빛이 비쳐서다.

낮에 유람보트를 타고 북한 쪽 강안에 접근했을 때 본 마을 건물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회색 빛이었다. 아슬아슬한 산비탈 뙈기 밭에 매달려 위태롭게 일하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저녁 식사 때 묘향산 식당에서 서브하던 북한 여종업원은 만포시가 고향이라고 했다. 2년 넘게 일하면서 다리만 건너면 되는 고향엘 다녀오지 못했다고 했다. 명절에도 손님이 많아서라고 했지만 그녀의 근로조건을 알 만했다. 말은 안 했지만 외출도 쉽지 않은 듯했다. 막간을 이용해서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뿌리치고 식당을 나섰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두만강 최북단에서 압록강 최남단에 이르기까지 강 양안은 너무나 달랐다. 강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도 북ㆍ중 경계는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뙈기 밭 투성이의 민둥산은 영락 없이 북한 쪽이다. 그 산자락에 다닥다닥 모인 건물은 예외 없이 회색빛으로 찌들었다. 반면 중국의 국경도시는 끝없이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거리는 온갖 브랜드의 차량들로 넘쳐났다.

대규모 북·중경협 물결 대비 있나

조만간 중국 국경도시들의 막강한 경제력은 두만강과 압록강 둑을 넘어 북한 쪽으로 넘쳐 들어갈 것이다. 옌지(延吉)에서 만난 김진학 옌볜 한인회회장은 "바퀴가 막 구르기 직전"이라고 했다. 두만강 하류의 나선경제특구, 압록강 하류의 황금평ㆍ위화도 경제개발지구가 북중 경협의 양대 축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그 못지않은 경제교류가 활성화될 게 틀림 없다.

그게 북한의 개방과 경제발전을 촉진할지, 아니면 정치ㆍ경제의 중국 예속 심화로 이어질지 속단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상황들을 염두에 둔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에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 갔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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