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움을 넘어 이제는 무섭다. 인기를 위해서라면 베끼기가 다반사인 우리 TV의 병폐를 감안하더라도 이런 획일이 없다. 금요일 저녁부터 온통 서바이벌 오디션에 매달리고 있다. 프로그램 수만 10여 개나 된다. 가수도, 아나운서도, 연기자도, 스포츠댄서도, 슈퍼모델도, 오페라가수도, 밴드도 이제는 TV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 세상이 돼버렸다. 수신료 인상을 위해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KBS조차 기성가수들의 경연인 MBC 의 인기를 보고는 을 내보내고 있으니. 가히‘서바이벌 오디션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오디션은 가수나 배우를 뽑기 위한 실기시험으로,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최고 장점은 공정성이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어떤 선입견이나 기득권을 버리고 오로지 실력으로 뽑는다.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오디션은 대부분 과정을 공개한다. 국립극장 단원들이 지난해 이런저런 조건을 대며 오디션 도입에 강력 반발한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다. TV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심사의 대중화이다. 흥미와 시청률을 위해 일반인을 심사에 참여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공정성 전략도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미국에서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기고, 인기를 끈 이유는 그것이 ‘기회’의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그것을 보면서 미국이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정말 미국은 그런 나라인가. 비주류들에게 여전히 ‘기적’의 세계는 스포츠와 연예계뿐이다. 오디션 프로에 수십만 우리 국민이 몰려드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TV는 이렇게 그들의 눈물과 감동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적 불공정과 부조리를 망각하게 만든다. 잔인하게 ‘나만 살면 그만’인 태도를 부추긴다. 전형적‘우민화(愚民化)’이다.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착각과 함정에 빠져 있다. 대중 참여가 곧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에서 보듯 전문가의 평가가 의미를 잃는다. 시청자 투표가 결과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오디션의 본래 목적은 그 분야의 실력자를 객관적이고 전문적 평가를 통해 뽑는 것이다. 어떤 시청자들이 투표하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위력이며, 누구보다 대중문화는‘대중’이 좋아하면 그만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또 다른 불공정이고, 횡포이다. TV가 다수결의 논리로 ‘전문성까지 무시하는 사회’를 조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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