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00만원 주는 회사가 있는데 일단 메일로 이력서하고 사진 보내봐.” 충남 모 대학 2학년 A(24)씨는 지난해 여름 초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회사에 들어갔다. 친구는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회사’라고 우겼지만, 일주일간 합숙 교육을 받다 보니 다단계회사가 분명했다. 다소 께름칙했지만 30대 초반 선배들이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나도 성공할 수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밤낮으로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성공이 아니라 1,000만원이 넘는 빚이었다.
회사가 준다던 월급 200만원은 600만원어치 물건을 자신에게 400만원에 준 뒤 제값에 팔아 차액을 남기라는 뜻이었다. 당장 물건을 살 돈이 없다고 했더니, 회사는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알선해주겠다고 했다. A씨가 대출받기를 거부하고 퇴사하겠다고 하자, 회사 측은 “동기들이 모두 대출을 받는데 왜 당신만 거부하냐. 판매를 시작할 때까지 여기서 절대 나갈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건강식품 구입비로 500만원을 대출 받았다. 회사 간부는 그제서야 “판매사원 10명만 데리고 오면 직접 팔러 다니지 않아도 관리 수당으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며 다독였다. 그러나 서울에 아는 사람이 없던 A씨는 판매사원 모집은 고사하고 물건도 거의 팔지 못했다. 또 한 차례 더 대출을 받아 빚은 4개월 만에 1,000만원으로 불어났다. A씨는 “다단계회사는 대부분 판매원들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라며 울먹였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4일 내놓은 조사 결과(2010년 기준)를 보면, 실적 상위 1%에 드는 판매원은 1년에 평균 4,308만원의 수당을 받았지만 하위 40%는 고작 1만7,000원을 받았다. 상위권인 1~6% 판매원이 받은 수당도 연간 396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교묘한 상술로 판매원 수는 2009년 340만명에서 지난해 357만4,000명으로 17만4,000명이나 늘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청년 구직자나 여름방학을 맞아 돈벌이에 나선 대학생 등 취약계층을 노린 다단계회사들의 불법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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