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만에 한반도에 찾아온 6월 태풍 메아리가 제주도를 통과한 6월26일 오전 제주도에서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철새들이 목격됐다. 노란색 부리에 검은색 뒷머리의 깃이 삐쭉 솟아있는 큰제비갈매기들이었다. 메아리가 서귀포 남쪽에 상륙한 시각은 이날 오전 7시. 이후 4시간30분 뒤인 오전 11시30분 제주도 서쪽 귀덕리 해안에서 30마리가 목격된 것을 시작으로 오후 1시30분에도 귀덕리 인근 협재 해수욕장에서 6마리가 관찰되는 등 26, 27일 제주도에서 30여 마리나 목격됐다. 일제강점기 조류학자 구로다 나가미치(黑田長禮ㆍ1889~1978)가 1917년 7월1일 인천 인근의 한 섬에서 1마리를 포획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 말고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새다. 무려 94년 만에 한반도를 다시 찾은 셈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필리핀과 대만 일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새가 1,100km나 북쪽인 제주도에서 무리로 발견된 것은 메아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물자원관 김진한 연구관은 “철새들은 태양의 각도나 별자리를 기준으로 이동방향을 결정하는데 대만 부근에서 갑자기 속도가 빨라진 메아리의 영향으로 시계가 나빠지면서 이들이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제주도에 찾아온 희귀조류들은 큰제비갈매기 만이 아니다. 큰군함조(2004년 8월), 에위니아제비갈매기(2006년 7월), 푸른날개팔색조(2009년 5월), 긴꼬리도둑갈매기(2010년 6월), 검은슴새(2010년 7월), 붉은가슴딱새(2010년 11월) 등 미기록종 조류들이 잇따라 목격되고 있다. 모두 동남아 일대에 분포하는 아열대성 철새들이다. 김 연구관은 “이들 조류의 먹잇감이 되는 어류들이 한반도 인근으로 이동하면서 철새들의 이동경로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미조(迷鳥ㆍ길 잃은 새)들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일이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