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이제 '범법' 상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금융계열사(SK증권)를 처분해야 하는 시한을 지키지 못해, 4일(정확히는 3일이지만 이날은 휴일)부터 그룹지주회사 SK㈜는 공정거래법을 어기게 된 것이다.
SK측은 그러나 "정부 말을 믿고, 국회 움직임을 따랐다가 이렇게 됐다"며 냉가슴만 앓고 있다. 지주회사전환 4주년이 되는 날 '범법기업'이 될 수밖에 없었던 SK의 기구한 사연을 두고 재계도 "법률리스크가 기업 경영의 안정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이다.
발단은 2007월 7월 SK의 지주회사 전환에서 시작된다. 당시 정부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했고, SK는 2004년 헤지펀드 소버린의 공격을 받으면서 지배구조개편 필요성을 절감해 지주회사로 옷을 갈아입었다.
다만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둘 수 없어, SK증권은 2년 안에 팔아야 했다. 하지만 이듬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완화'를 선언했고, 2008년 7월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SK로선 정부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SK증권을 팔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개정 법안은 국회에서 쉽게 통과되지 못했다. 그 사이 SK증권 매각 시한인 2009년 7월이 다가왔다. SK는 공정위에 기한 연장을 요청했고,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여 2년을 연장(2011년 7월) 해줬다.
긴 공방 끝에 2010년 4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관상임위를 통과한 만큼 법 통과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재계에선 "MB정부 금산분리완화의 최대 수혜자는 SK"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풀려가던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은 법사위원회에서 멈춰버렸다. 법사위 법안 2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분매각 유예 기간은 그 때까지 지분을 매각하라는 것이지 법이 바뀔 때까지 버티라는 게 아니다"며 법안 통과를 가로막았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나서 야당을 설득했고, 심지어 정무위가 법사위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공문까지 보냈지만, 여태껏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6월 임시국회 통과마저 무산되면서, SK는 2차 유예기간을 넘겨 꼼짝없이 '법 위반 기업'이 된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인해 SK가 혜택을 보게 된 것은 사실. 재계에선 "LG 등 금융계열사를 처분하고 지주회사로 간 기업과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SK관계자는 "애초 공정거래법 개정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당연히 SK증권 지분도 매각했을 것"이라며 "금산분리에 대한 정부정책 기조가 바뀌었고 소관상임위까지 통과됐기 때문에 금융계열사를 팔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재계는 무엇보다 무책임한 정치권을 비판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야당은 '대기업 특혜'를 이유로 반대하고 여당은 '여야 합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나몰라라 하고 있다"며 "정당의 이해 관계가 걸린 법안이라면 과연 이랬겠는가. 기업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너무하다"고 말했다.
법사위의 월권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소관 상임위를 합의 통과했으면 법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도 법사위가 1년 넘게 법안을 쥐고 있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이게 법사위가 가로막을 수 있는 사안인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정위도 난처해졌다.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면 100억 원 안팎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대차대조표상 장부가액이나 반기보고서 등이 나와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며 당장 제재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SK의 법 위반 자체가 비정상적이니까 제재도 못하는, 결국 공정거래법 자체가 우스워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9월이 되면 CJ, 내년 말엔 두산그룹도 SK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 정부와 재계는 정기국회에서라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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