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실시된 태국 조기총선에서 탁신 친나왓(62) 전 총리를 지지하는 푸어타이당이 압승을 거뒀다. 탁신의 막내 여동생 잉럭 친나왓(44)이 차기 총리로 확정돼, 부패 혐의로 해외 도피 중인 탁신의 정계복귀 시기도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AP통신에 따르면 97%가 개표된 이날 오후 9시 30분(현지 시간) 현재 푸어타이당은 과반 의석(251석)을 이미 넘어선 263석을 확보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확보한 의석은 161석에 그쳤다. 태국 언론 방콕포스트 등이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푸어타이당이 313석, 민주당이 152석을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375명과 비례대표 의원 125명 등 총 500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최근 10여년의 투표율 중 가장 높은 7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잉럭은 승리가 확정되자 "오늘은 우리 푸어타이당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태국 국민이 승리한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고, 민주당 소속 아파싯 웨차치와 총리는 선관위의 최종 집계가 나오기 전에 이미 "푸어타이당이 이겼고 민주당은 졌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AFP통신은 "야당 지지자들이 푸어타이 당사 앞으로 몰려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고 전했다.
푸어타이당이 과반수 이상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당 제1후보(총리 후보)로 지명된 잉럭은 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르게 된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뒤 부패 및 권력 남용 혐의로 기소돼 궐석재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도피한 탁신이 조만간 귀국, 정치 경력이 일천한 여동생을 막후에서 수렴청정하는 식으로 정치에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 탁신은 이날 선거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태국 국민이 화해를 원한 것 같다"며 "적절한 시기에 귀국할 것이며 (2006년 쿠데타에 대한)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탁신은 12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으로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푸어타이당이나 민주당의 정책에서 큰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어 이번 총선에서는 일찌감치 탁신의 귀국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잉럭은 "선거에서 이기면 오빠를 포함한 정치범들을 사면하겠다"고 밝혔지만 웨차치와 총리는 "탁신이 귀국하면 정국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며 사면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잉럭이 압승을 거두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지만, 태국 정국이 안정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 옐로셔츠(반탁신 성향의 군부ㆍ왕실 지지층)가 또다시 거리로 몰려나올 가능성이 높고, 푸어타이를 지지한 국민 상당수가 탁신의 정계 복귀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탁신이 태국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던 것도 반감을 산 원인 중 하나다.
이와 함께 태국 현대 정치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군부가 또다시 정치에 개입해 선거 결과를 뒤집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 태국 군부는 탁신을 쫓아낸 것을 포함해 총 열 여덟 차례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교체한 전력이 있다. 프라윗 옹수완 국방장관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군을 정치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며 쿠데타설을 부인했지만, 야당 등은 잉럭 집권에 따른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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