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워싱턴 정가에서 찰떡궁합으로 유명하다. 같은 당 소속이라도 하원과 상원의 대표들은 정치적 야심과 라이벌 의식으로 사이가 안 좋은 것이 보통이나 이들은 전혀 다르다.
베이너 의장은 하원 지도부 회의 때 매코넬 대표의 의견을 수시로 전달하고, 이 때문에 공화당 하원의원 사이에 "베이너 의장이 매코넬 대표와 상원에 굽신거린다"고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매코넬 대표도 "우리는 어느 한 사람을 희생시켜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베이너 의장이 올해 1월 하원 의사봉을 잡은 이후 국가부채, 재정지출, 경기부양, 건강보험, 기후변화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서 둘은 놀라울 정도의 공조를 과시해 왔다. 백악관, 민주당과의 어려운 담판에는 업무를 분담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감세 연장 협상에는 매코넬 대표가, 4월 정부지출 감축 협상에는 베이너 의장이 각각 나서 해법을 끌어냈다.
둘의 사이가 좋다 보니 민주당은 "공화당의 상하원 지도부 사이에 끼어들어 뭔가를 꾸밀 여지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상하원의 두 지도자가 이런 단합과 일치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놀랍다"며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1995년부터 의정활동을 해온 공화당의 리처드 버 상원의원은 "상하원 지도부간의 이런 신뢰는 과거에 결코 보지 못했다"고 감탄했다.
베이너 의장과 매코넬 대표의 끈끈한 관계는 행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강력한 협상력으로 이어진다. 최근 국가부채 상한 연장과 정부지출 문제에서 공화당이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며 백악관을 압박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서로를 견제해야 할 당내 거물이면서도 멋진 궁합을 보이는 것은 서로가 개인적 야망에 앞서 하원의장과 대표라는 현 직분에 충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라이벌 의식 때문에 과거 같은 당의 상하원 지도부는 야당과의 관계만큼이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과 밥 돌 상원 원내대표는 대권의 욕심 때문에 당내 분란을 일으켜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허무하게 재선을 헌납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 집권 1기 때에는 빌 프리스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상원 중도파를 끌어들이기 위해 하원과의 조세 합의를 파기해 당시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과 노골적인 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베이너 직전에 하원의장을 지낸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의원은 재임 당시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과 이념의 선명성 등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현안에 대한 입장에 다른 점도 없지 않다. 매코넬은 국가부채 연장을 여러 차례로 나누는 단기 증액을 선호하는 반면 상원보다 선거를 더 의식해야 하는 하원은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베이너 의장은 부유층 감세를 없애자는 민주당의 요구에 매코넬 대표보다 유연하다.
미 언론들은 백악관과의 부채, 세금 협상에서 상원과 하원의 온도차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한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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