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헤지펀드가 이르면 9월 국내에 출시된다. 헤지펀드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은 뒤 '고위험ㆍ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사모펀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투기성 자본이란 인식이 강해 외국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 형식으로만 허용돼 왔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투자 다변화 효과로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개정안을 6월20일 입법 예고했다.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차관ㆍ국무회의 등을 거치면 9월부터 토종 헤지펀드가 줄줄이 선보이게 된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공격적이고 역동적 투자를 감행하는 헤지펀드 특성을 살리기 위해 투자대상의 범위는 확대하되, 가입자 범위는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구조조정기업에 펀드재산의 50% 이상을 투자토록 한 기존의 제한을 폐지하고 개인에게도 투자기회를 줬다. 다만, 개인의 최소 가입금액이 5억원이고 운용 주체도 자산운용사는 수탁액 4조원, 증권사는 자기자본 1조원, 투자자문사는 일임계약액 5,000억원을 충족해야 한다.
금융 당국은 "투자위험이 높은 만큼 도입 초기에는 장벽을 높인 뒤 이후 추이를 보아가며 규제 완화를 검토하자"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초기 시장형성이 중요한데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활성화가 될지 의문"이라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한국일보는 금융당국의 개정안 작업에 참여했던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초기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에 선 정병욱 이화여대 교수의 주장을 들어봤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개인 최소 가입금액 5억 너무 높아 초기 적정 시장규모 만들기 힘들어"
금융위원회가 6월20일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내에서도 공매도, 차입(레버리지) 등 다양한 상품을 결합해 절대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헤지펀드가 탄생하는 것이다.
개정안의 요지는 개인 최저가입금액을 5억원으로 하고, 운용업체의 최저 자기자본은 60억원으로 하며, 운용 인가 조건은 ▦자산운용사 수탁고 4조원 규모 ▦증권사 자기자본 1조원 ▦투자자문사 일임 계약액 5,000억원으로 하는 것이다. 또 전문인력 요건은 국내외 헤지펀드 운용경험이 있는 3인 이상으로 했다.
헤지펀드 도입은 대체투자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한편 운용사 및 자문사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도입 초기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은 게 문제다. 금융당국, 업계, 학계 등은 개인 투자자의 가입자격이 초기 헤지펀드 시장규모를 결정하는데 주요 요인임을 강조해왔다. 최소 가입금액을 10억원으로 하느냐 5억원으로 하느냐가 주요 논란의 대상이었는데 금융위는 결국 개인의 최소 가입금액을 5억원으로 정했다. 초기에는 고액자산가로 한정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논리다.
실제로 고액자산가는 대체로 금융자산의 10분의1을 특정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그렇다면 헤지펀드에 5억원 이상 투자할 수 있는 금융자산가는 전체 금융자산이 50억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건데, 이에 해당하는 국내 고액자산가는 9,50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9월 도입될 한국형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는 최대 1만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문형 랩 등 헤지펀드와 경쟁할 수 있는 대체투자 대상이 자본시장에서 그 규모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5억원을 하나의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고액자산가의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헤지펀드 시장과 비교해도 싱가포르와 홍콩의 헤지펀드 최소 투자금액은 각각 8만달러(약 8,800만원), 5만달러(약 5,500만원)로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편이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개인의 가입 자격을 3억원 수준으로 완화하는 게 도입 초기에 적정 규모의 시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아울러 향후엔 최소 가입금액 규제보다는 개인 투자자의 순자산 기준으로 적격 투자자를 결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헤지펀드 운용 자격이 충족되는 회사는 증권사 10개, 운용사 11개, 자문사 6개 등 총 27개사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초기엔 대형사 위주로 운용주체를 허가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런 방안은 자산운용업계를 양극화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업계가 보다 창의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당국이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한 것이 사실이나 금융위기 주요 발생 원인이 헤지펀드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위기 당시 헤지펀드의 위험관리 및 금융당국의 정책 대응에 문제가 있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금융위는 헤지펀드에 대한 과도한 자격규제 및 진입장벽을 완화해 헤지펀드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공모펀드 중심이던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헤지펀드를 또 다른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정병욱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 "대량 손실 가능성 있는 금융상품 개인의 위험 감수 능력 고려해야"
정부는 6월20일 적격투자자대상 사모펀드에 대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도입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기에 도입하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헤지펀드는 금전의 차입(레버리지)과 파생상품을 통한 차입 효과를 이용해 고수익을 실현하는 투자 기법이다. 국내 자산운용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그동안 반드시 필요한 상품으로 주장돼 왔다. 반대로 과도한 차입은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촉발하고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높은 수익 기회를 추구하는 만큼 대량 손실의 위험 가능성도 수반하는 금융상품인 헤지펀드에 대해 위험 감수능력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헤지펀드 자체를 도입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정책적 고려와 판단을 요구한다.
업계에서는 헤지펀드 발전을 위해 참여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헤지펀드 도입 이후 국내 자본시장이 기대하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통한 혁신과 경쟁의 성과’를 ‘투자자와의 분쟁해결 비용’으로 날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가령 주식워런트증권(ELW) 불공정거래 혐의 등으로 증권사 사장들이 대거 기소된 사건 등 최근 발생한 통화ㆍ파생상품거래 관련 분쟁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투자 대상의 다양화 조치가 오히려 전체적으로 국내 파생상품거래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금융상품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금융회사는 상품 판매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위험도 커진다. 더구나 투자 대상은 넓히고 투자자는 보호하는 형태의 ‘한국형 헤지펀드’라고 하더라도 국내 정서상 아직은 헤지펀드에 대한 불안감과 부정적 견해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판매 책임에 대한 위험은 가급적 사전에 철저하게 억제하는 것이 좋다.
필자도 헤지펀드를 허용하고 가입 대상도 개인 투자자에게 확대되는 것에는 찬성한다. 다만, 개인 투자자의 진입은 초기에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투자자의 최소 가입기준은 크게 자산 규모와 투자금액으로 나눌 수 있는데, 미국(100만달러ㆍ약 11억원)과 유럽연합(50만유로ㆍ약 8억원)은 순자산으로, 싱가포르(8만달러ㆍ약 8,800만원)와 홍콩(5만달러ㆍ약 5,500만원)은 최소 투자금액으로 가입 기준을 설정해 놨다.
국내의 경우 헤지펀드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극복할 때까지는 최소 투자금액으로 제한하되 액수는 위험감수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5억원이 적당할 것이다. 또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간접펀드에 대해서도 정부는 올해 3분기 중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투자금액 제한 등 투자자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투자금액 제한에 대해 일각에선 ‘오히려 소액투자자의 투자 기회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등 부정적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의 최소 가입조건을 5억원으로 제한하는 것은 투자자의 손실 흡수능력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립적 자문서비스 이용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 투자자에게만 헤지펀드를 허용한다는 금융 소비자보호 정책적 관점에서도 이해되어야 한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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