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전과자 이모(34)씨는 출소 후 2001년 만난 A씨(여)를 9년 동안 만나오면서 연모의 정을 키워왔다. 그러나 A씨가 지난해 B씨와 결혼을 약속하고 상견례 날짜를 잡자 이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예비신랑 B씨를 납치해 다른 여성과 옷을 벗고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A씨에게 보내려 한 것.
납치극은 치밀하게 준비됐다. B씨를 기절시킬 수면제를 구입하고 술집과 감금 장소도 사전에 물색해뒀다. B씨를 태워갈 차량도 임대했다. 범행일인 지난해 6월12일. B씨를 술자리로 유인한 이씨는 B씨에게 수면제를 탄 폭탄주를 먹여 기절시킨 뒤 준비한 차량에 태워 감금 장소로 옮겼다.
문제는 B씨가 납치된 뒤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실종 상태라는 것. 이씨는 납치는 인정하면서도 살인 혐의는 강하게 부인했다. 잠에서 깨어난 B씨가 특별한 항의 없이 제 발로 걸어서 나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납치 장소에서 B씨의 혈흔이 발견된 점 등을 들어 이씨가 B씨를 직접 살해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직접 증거는 없지만 살해 가능성도 납치 범죄의 양형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1심 재판부는 “이씨가 B씨를 살해했는지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이씨가 B씨의 실종을 전제로 철저히 범행은폐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했고, 이씨의 범행이 B씨 실종에 결정적인 계기를 초래했다”며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 살인 혐의에 대해 엄격한 증명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의 형은 지나치게 무겁다”며 징역 7년으로 감형했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양형 부담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항소심 법원의 양형이 부당하지 않다”며 이씨와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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