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관계이던 남녀가 서로 헤어질 것을 전제로 남자가 정자를 제공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가 태어났다면 법적으로 둘 사이에 친자관계가 인정될까.
A(39)씨는 10년 전 연하의 남성 B(30)씨를 만나 8년 가까이 동거했다. 이 기간 동안 B씨는 A씨 부모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했으며 가족 잔치에 참석해 가족사진을 함께 찍고, 스스로 “빠른 시간 안에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는 등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2008년 초, B씨는 10살 연하인 여대생 C씨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A씨는 둘의 관계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B씨가 C씨를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속였기 때문이다. C씨는 A씨에게 “부모의 반대로 결혼이 어려울 것”이라며 B씨와 헤어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에게 “아기를 가지면 부모님이 달리 생각해주시지 않겠느냐”며 인공수정을 위한 정자 제공을 부탁했다. 자연 유산을 두 번이나 해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인공수정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A씨와 헤어질 생각이 급했던 B씨는 마지못해 정자 제공을 승낙하면서도 대신 각서를 요구했다. 각서는 ‘정자를 증여 받는 대신 절대 연락을 하지 않고 임신 이후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A씨는 2009년 12월 시험관 아기 시술 성공으로 쌍둥이를 출산했고, 약속대로 B씨는 연락을 끊었다.
문제는 A씨가 지난해 B씨를 상대로 친자관계를 인정하라는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재판과정에서 B씨는 “나는 정자만 제공했을 뿐 실질적으로 아버지가 될 의사가 없었다”며 친권을 거부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 박종택)는 B씨에게 두 아이의 미지급 양육비 1,600만원과 향후 양육비로 매달 1인당 50만원씩, 그리고 A씨에게 위자료 3,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가 애초부터 아버지가 될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둘은 사실혼 관계였고 정자 제공자도 특정이 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준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비(非) 배우자의 정자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인공수정의 경우 인지청구를 할 수 없다”고 단서를 붙였다. 정자 제공자가 불특정 다수이고 익명을 전제로 제공하는 인공수정의 특성상 친부 관계를 인정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법원 관계자는 “인공 수정 후 정자 제공자가 친권을 주장하거나 대리모와 둘러싼 양육 친권 논란에 대해 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판례가 정리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판례 있거나 논의의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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