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정부 합의안이 국회에서 일부 수정돼 검찰 내부에서 반발 기류가 확산되자 "합의가 깨지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청와대가 강하게 만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세계검찰총장회의 폐막식까지 행사를 주재한 김 총장은 일단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인 4일,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최근 파문에 대해 자신의 거취문제를 포함한 구체적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대검찰청 고위 간부들이 줄사표를 냈던 지난달 29일 김 총장은 "중요 국제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회의가 끝난 뒤 (거취 문제를 포함해) 직접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했고, 30일에도 '책임'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사의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청와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전날 세계검찰총장회의 개회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 총장이 "이 상태로는 조직 관리가 쉽지 않다"는 취지로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이 대통령은 "임기 중간에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 총장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만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총장의 사퇴는 안 된다는 게 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임기를 1개월여밖에 안 남겨둔 시점에 사퇴하는 게 적절한지는 본인이 잘 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총장의 임기(2년)는 다음달 19일 끝난다.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총장이 사표를 낼 경우 수리 여부는 전적으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이 곧바로 사표를 내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2일~11일) 일정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해 외국을 순방하는 중에 사퇴하는 것은 인사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총장이 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이 대통령 귀국 후에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할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의 기류와 상관없이 검찰 안팎에서는 김 총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김 총장 스스로 "(조직을 대표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마당에 사의를 거둬들일 명분이 약하고, 그럴 경우 조직 전체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총장님의 속뜻이야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의를 번복하면 모양새도 더 이상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검ㆍ경 수사권 조정 내용이 포함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날 숨죽인 듯 고요했다. 전날까지의 격앙된 기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재경지검의 한 평검사는 "검찰의 진정성을 국민이 믿지 않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정치권이나 경찰에 대한 불만을 갖기보다는 어떻게 잃어버린 국민 신뢰를 되찾을지 고민하는 자세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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