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기다려 보겠다."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을 촉발시킨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1일. "수사 계획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이 같이 답했다. 도청 의혹이 제기된 지 8일이나 지났고, 국민들은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 하지만 경찰은 태평세월이다. 사건 현장인 국회 내 민주당 대표실 조사는 국회사무처 핑계를 대며 마냥 미루고 있고,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한 의원 소환 조사도 실행 기미가 안 보인다. 이쯤 되면 답답할 법도 한데 경찰은 "수사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진척 없는 수사 내용조차 숨기기에 급급했다. 민주당이 경찰에 '유력한 제보'를 전달했다고 밝힌 지난달 28일 경찰은 "추측성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도청 주체로 KBS가 거론되자 "민주당이 준 자료로는 (도청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런 경찰의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 수사를 맡은 남대문경찰서의 행태도 비슷했다. 국가정보원 연루설이 연일 제기됐지만 경찰은 사건을 파헤치는 대신 관계자들의 입을 막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종일관 시간 끌기 끝에 결국 사건의 실체는 미궁에 빠졌다. 아마도 경찰은 이번 도청 의혹 수사도 그때처럼 마무리하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경찰은 최근 검찰과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민들은 "경찰도 수사의 주체로 인정 받아야 한다"며 그들을 내심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 도청 의혹 수사를 보면서 '경찰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혀를 차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수사기관은 객관적 사실에 의지해 신속히 진실을 규명할 의무가 있다. 정치권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는 없다.
김현수 사회부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