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 강의. 말만 들어도 칙칙하고 지루해 보인다. 듣는 쪽이 그 무한한 따분함에 주리를 틀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경기 군포경찰서 군포지구대 김이문(51) 경위의 강의는 좀 다르다. 이 요상한 경찰관은 강의에 마술을 칵테일한다. 듣는 이마다 매직쇼를 보는 듯 확 빠져들 수밖에. 학생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매력 듬뿍' 강의를 하고 있는 그를 따라 지난달 27일 군포시 부곡중앙초등학교 강당에 들렀다. 이 학교 4~6학년 학생 260여명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의를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입음새부터 튀었다. 우선 경찰관들이 경찰의날이나 돼야 한번 걸치는 예복 정복 차림이다. 곳곳에 달려 있는 금장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해 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에 입는다고 한다. 마술 모자와 검은 선글라스는 코믹한 느낌을 주려는 그의 암팡진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가 강의 서두에 한 것은 계단 박수. 한 번→두 번→세 번→두 번→한 번 순서로 손뼉을 치게 하자 떠들던 아이들이 갑자기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고요해지면서 그에게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곤 첫 번째 마술. 쇼핑백을 꺼내들더니 안을 보여 준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다. 다시 쇼핑백을 접었다가 편다. "와" 하는 아이들의 탄성이 강당을 메운다. 안에서 상자가 '뿅' 하고 나타난 것. 연습을 많이 한 듯 솜씨가 매섭다. 이렇게 세 번 조화를 부려 상자 세 개를 만들더니 세 상자에 연결된 줄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보인다. 그런데 상자마다 작은 종이끈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때리지 마' '뺏지 마' '훔치지 마'란 글자가 적혀 있다.
김 경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강당을 드르륵 울린다. "얘들아. 우리가 친구들 그냥 재미로 막 때리지. 또 아무 생각 없이 친구 물건 뺏고, 훔치지. 그래 놓고도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지. 하지만 그건 죄야. 여러분은 미성년자여서 죄를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물론 법에(형법 9조)에 14세가 되지 않으면 감옥에 가지 않게 돼 있는 것은 맞아. 하지만 부모님이 돈을 물어 줘야 해. 그리고 학교에선 벌을 받게 돼."
그리곤 그는 아까 마술로 창조한 상자 세 개를 다시 한번 들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자, 따라해 봐. '때리지 마'." 아이들이 특유의 높고 낭랑한 목소리로 "때리지 마"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뺏지 마'." 이번에도 아이들은 김 경위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리고 '훔치지 마'." 아이들의 호응은 다시 이어졌다.
다음은 김 경위가 가장 방점을 두는 아동 납치와 유괴 예방 강의. 그는 먼저 퀴즈 한 가지를 던졌다. "혹시 낯선 아저씨가 부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답이 플래시 터지듯 툭툭 터진다. "무시해요" "잘 대답해 줘요" …. 김 경위는 정답을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두 팔을 벌렸을 때보다 멀리서 대답을 해야 해. 다가오면 도망칠 수 있게."
다음 퀴즈는 '낯선 사람이 차를 태워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다. 정답은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그는 나머지 퀴즈와 정답도 차례차례 제시한다. '나쁜 아저씨가 입을 틀어막을 땐 어떻게 하나'라는 퀴즈는 '새끼손가락을 떼어내고(이렇게 하면 상대가 아파서 손이 떨어진다) 살려 달라고 소리친다'가, '버버리맨이 선글라스를 끼고 이름을 부르며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퀴즈는 '절대로 따라가지 말고 생김새와 옷차림을 적어 경찰서에 신고한다'가 옳은 답이다. '낯선 아저씨가 신문에 기사를 내려고 하는데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나' '모르는 아저씨가 부모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 응급실에 있는데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문예회관에서 마술 공연을 하는데 공짜로 보여 줄 테니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는 질문의 경우 '절대로 응하면 안 된다'가 정답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청중들의 집중도가 떨어져 이곳저곳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삐죽삐죽 나오자 그는 비장의 마술 3종 세트를 꺼내들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이 매직북 마술. 그가 책 하나를 조심스레 들자 아이들은 뚫어져라 그것을 응시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이윽고 책장을 스르륵 빨리 넘겼다. 아무 그림도 없었다. 그리곤 다시 책장을 넘기자 웬걸, 피노키오가 예쁘게 움직이는 모양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책장을 넘기자 이번엔 곰돌이 인형이 춤추는 모습이다.
다음은 장미꽃 마술. 긴 막대 끝에 불을 붙이니 장미꽃이 '짠' 하고 나타난다. 그리곤 마우스코일 마술. 입속에서 줄을 줄줄 꺼내는데 1m, 2m, 3m, 이건 끝이 없다. 아이들은 대환호.
분위기가 화끈 달아오르자 동영상이 무대 뒤 화면에서 흘러나왔다. 김길태 조두순 정성현의 납치 성폭행 사건 보도 영상이었다. "얘들아.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 범죄자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유인했는지 잘 알아둬야 해. 알면 당하지 않거든."
그리고 그는 한 학생을 나오게 하더니 수갑을 꺼내고는 양손에 채웠다. 아이들이 재잘댔다. 수갑을 처음 봤기 때문일 것이다. 김 경위는 "자, 이제 마지막으로"라며 강의를 끝내는 멘트를 하려 한다. 손에 수갑이 묶인 어린이는 김 경위가 그냥 갈까 봐 아연실색. "아, 안 풀어줬네." 그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갑에 열쇠를 끼워 풀어 준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코미디언 이주일의 걸음걸이로 또다시 웃음을 모은다.
마지막 동영상은 이 지역 출신인 피겨스타 김연아의 스케이팅 모습. "여러분은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해. 그래야 여러분이 행복하게 자라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어. 김연아처럼."
■ 김이문 경위의 '매직캅' 인생
김이문 경위는 경기 군포시와 의왕시에서 학교를 돌며 8년째 범죄예방 강의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은 무려 12만5,000명(98개 초중고교)에 달한다.
2004년 무렵 대한민국은 왕따와 학교폭력 문제로 후끈 달아올랐다. 김 경위는 경찰관으로서 해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그 해부터 학생들이 범죄의 주체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는 2004년 대학원 입학으로 연결됐다. 그의 석사논문 제목은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조사연구'. 아버지가 중학교 때 세상을 등져 가난 속에 자라는 바람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한이 깊고 깊어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에 다닌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소년 문제를 공부해 보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그가 강의에 마술을 접목해 '매직 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아이들의 관심을 붙잡아두기 위해서였다. 김 경위는 "강의를 해보니 아이들이 죄다 졸았다"며 "그래서 마술을 활용해 재미있게 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안양시 레지킹마술학원에 등록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렇게 익힌 마술이 100여 가지.
김 경위는 "손이 부드럽지 않아 처음 6개월 동안은 무척 고전했다"고 한다. 그는 새벽까지 밤을 새가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시간뿐 아니라 돈도 꽤 들어갔다. 학원비와 재료비는 온전히 박봉에서 부담했다. 부인 최영복(50)씨는 "나는 남편 없고, 돈 없는 과부"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마술을 잘못하는 바람에 벌어진 웃지못할 일화도 있다. 한번은 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비둘기 마술을 선보이는데 비둘기가 옷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는 어물쩍 넘어갔지만 나중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김 경위는 후배에게 레크리에이션도 배워 강의 때마다 하나둘씩 섞는다. 소주 한잔 사 주고 배워 큰 돈은 안 들었지만 그의 열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강의는 효험이 제법 있다. 김 경위는 "한 고교에서는 불량 학생들이 마술을 곁들인 강의를 들은 뒤 학교폭력 예방 상담에 앞장선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 경위는 강의를 통해 알게 된 불량 학생 등을 돕는 데도 열심이다. 강의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상담을 통해 선도하는 것. 이 때문에 김 경위의 이메일 함에는 각종 고민거리를 상담하는 학생들의 글이 끊이지 않는다.
불우 청소년에 대한 그의 사랑도 지극하다. 자율방범대나 향우회에 가서 마술 공연을 해 주고 받은 쥐꼬리만한 돈을 꼬박꼬박 모아 10개 교 50명의 학생을 돕는다.
하지만 격무에 강의를 병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밤샘 근무를 하고 휴무일(경찰은 야근 다음날 쉰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 노인, 주부들을 만날 때는 무척 고되다. 그런 그가 근무일에도 강의를 할 수 있게 조종림 군포서장과 조준익 군포지구대장, 김기해 지구대 팀장이 참 잘 도와준다. 같은 지구대 여선미 순경은 강의 때마다 그의 도우미를 자처한다. 또 딸 혜수(20)씨, 아들 범수(18)군은 그의 강의를 모니터링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김 경위는 "학교폭력과 노인범죄를 1%만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강의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 김이문 경위 약력
1959년 전남 함평군에서 태어나 함평초등학교, 함평중, 안양공고를 졸업한 뒤 1989년 순경으로 경好?투신했다.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만학의 길을 걸어 2002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원광대 경찰행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군포경찰서 산본지구대에 재직하면서부터 시작한 청소년지킴이 활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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