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치기 취재가 화제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지난달 24일 문방위에서 KBS수신료 인상안의 조속 처리를 주장하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녹취록을 일부 공개하고, 이어 KBS의 녹취 연루설이 제기되자 김인규 KBS 사장이 사석에서 "벽치기 취재는 오랜 관행"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논란거리가 된 것. 벽치기 취재란 기자들이 비공개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회의장 문이나 벽에 귀를 대고 듣는 원시적 방식을 말한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회의는 접근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벽치기 취재는 언론에 비교적 관대한 정치권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 벽치기 취재는 특종 경쟁에서 비롯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 인터넷 세상이 되고 SNS가 대세인 요즘 속보와 특종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10여 년 전만해도 한 건을 터뜨리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서류를 몰래 가져가는 것은 다반사였고 회의실 탁자 밑에 숨어 있다 발각된 경우도 있었다. 좀 더 잘 듣기 위해 청진기를 동원한 기자도 있었다. 1990년대 초 한 정치부기자는 총리실 정책담당 부서의 캐비닛에 슬쩍 숨어들어가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 손전등을 들고 주요 서류들을 모조리 메모해 여러 건의 특종을 하기도 했다.
■ 과거에는 이런 취재관행이 묵인되고 때론 무용담이 되기도 했지만, 정보 및 사생활 보호가 중요해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무선마이크나 극소형 녹음기처럼 기구를 동원한 취재는 도청으로 간주돼 용인되지 않고 있다. 법률용어로 도청은 '타인의 대화나 통화내용을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엿듣는 일'로, 통신비밀보호법상 10년 이하의 징역, 5년 이하의 자격정치에 처하게 돼 있다. 실제 2004년 한 지역신문 기자가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상임의장실 탁자에 녹음기를 설치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 외국에서도 도청 취재가 크게 문제된 적이 있다. 유명인의 사생활 폭로로 유명한 영국 '뉴스 오브 월드'의 왕실 전담기자인 클라이브 굿맨은 찰스 왕세자 사무실 전화를 도청했다가 2006년 징역 4월을 선고 받았다. 루퍼드 머독 소유의 이 신문은 다른 유명인들도 도청한 것으로 드러나 천문학적인 소송을 당했으며 금년 4월 정식 사과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도청 의혹은 어찌 될까. KBS는 1일 연루의혹을 부인했다. 경찰이 현재 수사 중인데 어째 뜨뜻미지근하다. 이번에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면 "역시 경찰은 안돼"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