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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드/ 국제사법기구 '초라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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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드/ 국제사법기구 '초라한 자화상'

입력
2011.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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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범 활개쳐도 '종이 호랑이' 서방 패권전쟁 정당화 도구 오명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ㆍ19세기 영국 수상 윌리엄 글래드스턴)

영미권 법조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법언(法諺)으로, 신속한 사법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죄를 묻는 절차는 당연히 신중해야 하지만, 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경우 피해자들이 입을 박탈감과 피해 의식, 정의 실현이 미뤄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고려해 가능하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재판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법언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는 기사들이 최근 잇달아 외신을 장식했다. 현재 국제사회에는 한 국가의 사법기관이 처리할 수 없는 형사사건을 맡아 사법권을 집행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유엔이 관여하는 특별법정 등이 존재하지만 무기력함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지난달 28일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대량학살 책임을 물어 체포영장을 발부한 ‘중요 국제수배자’임에도 버젓이 중국을 방문했다. 아프리카에서 자원 외교에 올인하고 있는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멀리서 오신 손님을 환영한다”며 극진히 환대했다. 알 바시르 대통령은 수단 다르푸르에서 봉기한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민병대를 동원해 수백만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무시하고 이웃 국가 차드나 케냐를 오가는 등 거리낌 없이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며 2009년과 지난해엔 메카로 성지순례까지 다녀왔다.

ICC는 지난달 27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도 체면을 구겼다. 카다피에 대한 체포영장은 ICC가 현재 진행중인 분쟁에 개입한 첫 사례로 기록됐지만, 리비아 정부는 “ICC는 서방이 제3세계 지도자들을 기소하는 도구”라며 이를 평가절하해 버렸다.

바시르와 카다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ICC 검찰은 체포영장을 집행할 강제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결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집권자가 수배대상일 경우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한 신병을 확보할 방법은 없다. 설사 실각하더라도 로마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로 망명해 버리면, 법정에 세울 방법은 요원하다. 조약가입국에만 실효성이 있다는 게 또 다른 한계인데,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은 물론 대다수 아랍국이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ICC가 영장을 발부해도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엔의 특별법정도 한계를 노출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법상 한계나 관련 국가들의 비협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이뤄진 반인륜 범죄는 책임자를 단죄하기까지는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친다. 지난달 27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시작된 크메르루주 정권 실세 4인방에 대한 공판도 그러한 예다. 유엔이 관장하는 캄보디아특별재판소(ECCC)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누온 체아(85) 등 네 명의 피고인은 1975~79년 공산정권 하에서 170만명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캄보디아 오지에서 유유자적한 노후를 즐기다 2007년 이후에야 체포됐다. 그 사이 정권 최고 책임자인 폴 포트는 사망했다. ECCC는 2006년 출범하고도 5년이나 시간을 끌고서야 공판을 시작했는데 이유는 현 훈센 정부의 비협조와 재원 마련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 사이 중요 피고인들의 나이는 대부분 여든을 넘겼고, 피고인들이 책임에 걸맞은 형을 복역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같은 실효성 논란 외에도, 국제사법기구가 서방 측의 패권전쟁을 사후에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비판은 특히 ICC와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 등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제3세계에서 정권 교체를 추진하거나 선제공격을 감행하면 ICC가 이들 나라 지도자를 반인륜 범죄 혐의로 기소하거나 체포영장을 발부한다는 것이다. 범죄자여서 피고인이 되는 게 아니라, 패배했기 때문에 법정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리차드 포크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알자지라에 기고한 글에서 “2008~2009년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자행한 행위는 왜 처벌하지 않느냐”며 “ICC가 카다피의 범죄혐의를 인정하면서 NATO와 카다피 사이에 남아 있던 일말의 협상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강조했다. ICC 결정에 따라 NATO의 리비아 공습 목적은 ‘민간인 보호’에서 ‘카다피 정권 교체’로 공식화한 셈이 됐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세기의 전범재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 범죄를 재판에 부치게 된 데 엄중한 책임을 느낀다."

1945년 11월 10일 독일 뉘른베르크법정에 선 수석검사 로버트 잭슨 미 대법원 판사의 목소리에 비장함이 가득했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옛 소련이 체결한 수뇌 범죄자의 소추 및 처벌을 위한 런던협정에 근거해 첫 전범재판(戰犯裁判)이 열린 것이다.

전범재판은 대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시 자행된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1945~48년 독일의 뉘른베르크와 일본의 도쿄에서 거행된 재판을 가리킨다. 뉘른베르크재판에서는 게슈타포 창설자인 헤르만 괴링 등 12명에게 사형, 부총통 루돌프 헤스 등 3명에게는 종신형이 언도됐다. 괴링은 처형 직전인 1946년 10월 청산가리를 삼켜 자살했고 헤스는 베를린의 슈판다우연합군교도소에서 복역 중 1987년 8월 사망했다. 독일의 항복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던 유대인 학살의 원흉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체포돼 예루살렘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1962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쿄재판에서는 일본 총리를 지내며 진주만 기습공격을 지시한 도조 히데키 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돼 1948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2002년 상설법정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창설되기 전까지는 유엔이 관장해 한시적으로 특정 범죄를 다루는 특별법정이 설립됐다. 유고전범재판 등이 그러한 사례다. 1991~2000년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부추겨 '인종청소' 명목으로 수십만 명을 죽게 만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대통령은 1995년 5월 옛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에 의해 기소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11일 감옥에서 사망했다.

현재 킬링필드 학살 전범 공판을 진행중인 캄보디아특별재판소(ECCC)도 이와 같은 유엔 산하 특별법정의 하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게 사형을 언도한 이라크전범재판소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후원을 받은 이라크과도정부가 설립한 것이었다. 후세인은 2006년 12월 사형됐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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