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이경훈 지음/푸른숲 발행·260쪽·1만3,000원
도쿄(東京)에서 다도(茶道)를 가르치는 70대 할머니가 몇 해 전 태어나서 처음 한국 구경 온 적이 있었다. 한 사람 건너 알게 된 그를 서울 이곳 저곳 안내했다. 그때 서울역 앞 대로를 쳐다보던 그의 입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온 촌평이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은 자동차 세상이군요."
도쿄에도 자동차는 많다. 출퇴근 시간에는 길이 막힌다. 런던은 러시아워의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도시다. 뉴욕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게다. 세계적인 메트로폴리탄에서 자동차가 넘쳐나는 건 숙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서울은 이런 사정이 다른 도시들보다 한참 더 열악한 것 같다. 단지 자동차가 많은 정도가 아니다. 도쿄보다 훨씬 넓은 도로를 다 메우고도 모자라 서울은 자동차가 인도마저 점령했다. 보행인을 덮칠 듯 인도를 거리낌없이 오가는 오토바이를 만나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가 쓴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서울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돼 생겨난 것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짚고 있다. 서울은>
저자가 서울을 도시가 아니라고 몰아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도시라면 갖춰야 할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없다는 점이다.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 로 유명한 프랑스 사진작가 얀 베르트랑이 "자동차에 의해 살해된 도시"라고 혹평한 것처럼 서울은 유모차를 맘 놓고 끌고 다닐 수 있는 제대로 된 인도가 거의 없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인도가 있어도 그곳을 태연히 자동차가 점령하고 있다. 하늘에서>
서울시와 각 구청은 몇 년 전부터 '걷고 싶은 거리'를 지정했다. 남산 소파길이나 덕수궁 돌담길 같은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도시의 활기가 느껴질 만큼 사람들이 오가고 찾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저자는 옛날 살던 기억을 더듬으며 남산 소파길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참 걷는 동안 그 길에서 만난 사람은 버스를 잘못 내린 듯한 등산객 3명까지 포함해 고작 10명뿐이었다. 길 옆으로 자동차만 열심히 지나갔다.
인도를 점령한 자동차, 개념 없는 거리 사업은 기본적으로 아파트 단지 거주와 짧은 거리조차 자동차로 이동하는 서울의 '거리부재' 문화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미국 근교에서나 볼 법한 생활문화가 거리 없는 도시를 부추기고 있다는 말이다. 마을버스라는 독특한 대중교통수단 역시 동네 거리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거리를 활기차게 만드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웃 주민들과 걸어서 스쳐 지나며 인사 나누고, 카페가 내 집 거실처럼 되고 동네 식당을 집안 부엌처럼 들락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심 건물을 부수고 한적한 공원을 많이 만드는 도시 녹화사업의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도심의 경우 그런 지역은 공동화의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치안도 불안해지기 쉽다. 덩그러니 공간만 있지 사람들이 근접하기는 어려운 '광화문 광장' 같은 곳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활력 넘치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다. 가능하다면 도심으로 자동차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충분한 인도를 확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원보다 개성 있는 다양한 상점을 조성하는 일이다.
일부나마 이를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이 길에는 가로수가 우거져 있지 않다. 사람들이 모이는 지하철역이 가까이 있지도 공연장이 자리잡고 있지도 않다. 명품매장이 늘어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기엔 구경거리가 있다. 저자는 "그곳에는 신상품 옷이 있고 구두가 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상품이 있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 멋진 여성들을 볼 수 있고 쇼윈도에 목을 빼고 구경하는 청춘이 있다. 이 거리의 성공은 이곳의 평당 가격이 강남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입증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울시의 디자인 도시 만들기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 시도조차 소음과 쓰레기를 하나 더하는 정도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음벽을 아름답게 색칠하고 재질을 달리해서 눈에 거슬리지 않게 만드는 시도는 상처를 치료 없이 감싸기만 하는 루체비스타(빛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마을버스를 예쁜 연두색으로 칠하는 것, 아파트 벽면을 그래픽 처리하는 것,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하는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고 지적한다.
'공원보다 상점을'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적어도 그의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이웃이 있는 동네에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서울은 겉치장만 요란한 디자인 도시가 되고 말지도 모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