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내달 6일 기름값 100원 할인이 종료되더라도, 한꺼번에 100원을 올리지 않고 단계적으로 환원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일주일 전만해도 "고통분담을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했지만, 정부의 직간접적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30일 "기름 가격이 갑자기 올라가면 수급에도 차질을 줄 수 있고, 소비자 불만이 커질 수 있어 기름값을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단계적 인상을 언제부터 할지, 기름값을 몇 단계로 올릴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더 검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다른 정유사들은 기름값 환원여부에 대해 방침을 정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SK에너지를 비롯해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다른 업체들도 결국은 단계적 가격 환원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SK에너지의 경우 100원 할인기간 동안 캐시백 방식의 인하에 불편을 느낀 운전자들이 GS칼텍스에 몰리면서, 국내 시장 점유율에서 바짝 추격을 허용한 상황. 따라서 단계적 가격 환원대열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GS칼텍스가 가격을 단계적으로 환원하면 다른 회사들도 불만스럽겠지만 자연스럽게 따를 수밖에 없다"며 "조만간 대책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유사들은 막판까지도 단계적 가격환원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팽배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100원을 할인하는 바람에 2분기 손실을 봐야 했던 만큼, 이젠 가격을 돌려놓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GS그룹 총수인 허창수 전경련회장도 "이 정도 고통을 분담했으면 충분히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가격환원 연착륙'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이어 "정유사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름값을 인하했으니까 이를 올리는 과정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유지해서 기름값을 연착륙시키는 게 국민에게 사랑받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유사들이 그런 말에 부담을 느낄 것 같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부담을 느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결국 몇 시간 뒤 GS칼텍스는 정부 입장을 받아들여 단계적 가격환원 방침을 밝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GS칼텍스가 여수 공장 고도화시설 고장으로 공급차질을 빚은 점, 허 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파상공세 등을 고려해 먼저 백기투항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유가 환원과는 별도로 최근 논란을 빚었던 유류세 인하에 대해 정부는 불가방침을 재확인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브리핑에서 유류세 인하에 대해 "현 단계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명확하게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관세 인하에 대해서도 "할당관세 3%를 0%로 낮춰도 가격인하효과는 20원밖에 안 된다. 과연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지 등을 깊이 따져 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