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세계검찰총장회의 개최라는 기쁨도 잠시, 이 행사의 호스트인 김준규 검찰총장은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거취 결정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과정에 검찰의 입장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한 항의와 조직수장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퇴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김 총장의 출근지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가 아니라 삼성동 코엑스였다. 이날 오전 10시 이 곳에서 제4차 유엔 세계검찰총장회의 개회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임박한 '비상 상황'이었지만, 세계 100여개국의 검찰총장들을 초청해 놓고 자리를 비우는 외교적 결례를 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개회사를 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등 하루 종일 행사장을 지켰다.
하지만 '축제'의 주최자로서 지어 보이는 웃음 속에서도 씁쓸한 표정은 감춰지지 않았다. 김 총장은 이날 오후 5시께 "(수사권 조정) 합의가 깨진 데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주 월요일 구체적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자진 사퇴의 뜻을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국제통' 검사인 김 총장으로선 절정의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임기(2년)를 불과 1개월 반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안타까움은 더할 것이다. 그러나 전날 대검 검사장급 간부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고, 일선 검사들이 검찰 수뇌부 책임까지 제기해 사면초가에 놓인 그에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김 총장이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가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검찰도 격앙됐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귀남 법무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시내 모처에서 전날 사의를 표명했던 대검 검사장급 간부들과 긴급 회동을 갖고 "앞으로 더 이상 사의 표명 문제가 거론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사태 진화에 애를 썼다. 박용석 대검 차장도 부장검사급 중견간부들이 참석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동요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국회 법사위의 수정안이 이날 오후 국회를 통과한 뒤, 일선 검찰청은 허탈해하면서도 대외적인 대응은 자제했다. 강력 반발 기류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일단은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게 차선책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평검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전지검 공주지청의 검사 2명이 이날 사의를 밝혀 이번 사태가 평검사들의 향후 집단 사퇴로 이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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