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 약사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 단체에서는 차제에 전문의약품 중 일부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일반약 전환을 주장하는 약품 중에 상당수는 소화성 궤양치료제이다. 약사회는 타이레놀 등의 해열 진통제, 심지어 미성년자라도 약국에 가서 돈만 지불하면 박스째로 판매하는 박카스 등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 반대 이유가 편의성 보다는 안정성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의사의 진찰을 거친 정확한 진단 하에 치료를 위해 처방 하는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을 주장하는 이유 중의 중요한 근거가 외국의 예이다.
보도에 따르면 약사회는 "외국의 경우 이들 전문약을 모두 일반약으로 분류해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약으로 묶어 놓고 있다"며 "오남용 우려가 적고 유효성과 안정성이 확보된 만큼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다수의 외국에서 소화성 궤양치료제를 일반약으로 분류했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소화성 궤양치료제는 정확한 진단에 의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으로 분류되는 것이 옳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중 부동의 첫째는 암이다. 모든 질병의 치료가 그러하듯이 가장 최선은 예방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암의 발생원인은 매우 다양하므로 개개인이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100% 예방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 덕에 암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하게 치료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아 특정암의 경우 거의 100% 완치가 가능하다.
우리나라 암 발생률 부동의 1위인 위암 역시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완치율이 100%에 가깝다. 위암의 대표적인 증상은 위염, 위궤양 심지어는 단순한 소화장애 시 느끼는 자각증세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소화성 궤양 치료제의 일반약 전환시 오남용의 우려가 매우 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의한 처방에 의하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증세가 완화되겠지만, 조기진단과 조기치료의 기회를 잃어버려 완치가 가능했던 환자가 중기 또는 말기로 악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감안하면 소화성 궤양치료제의 일반약 전환은 위험천만하다.
외국의 예가 그러니 우리나라도 따르자는 주장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위암의 발생률이 매우 높은 나라인데 반해 미국을 포함한 서구 국가들은 이미 1930년대부터 위암의 발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위암은 전체 암 중 발생률이 여전히 1위이나 최근 10년간 사망률이 급감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급속한 발전이 위암 사망률 감소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나, 위암 사망률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은 조기 발견에 따른 조기 치료라는 것이 학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즉 조기위암의 경우 완치율이 100%에 가까운 반면 주변장기로의 전이가 있거나 주변 임파선에 광범위하게 암세포가 번진 말기 위암의 경우는 여전히 5년 생존률은 10% 남짓하다. 이런 국가간의 질병 발생률의 현저한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외국이 그렇게 하니까 우리나라도 따르자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7월 1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는 '약국 외 판매 의약품' 과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을 논의한다. 질병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는 의사다. 전문가의 의견을 직역이기주로 폄훼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없어야 한다.
주수호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