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해방)광장에서 또 다시 시민들이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충돌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시민혁명에 밀려 하야한 지 5개월 만에 최악의 소요사태다. 시민들의 이번 타깃은 임시정부를 이끌고 있는 군부다.
AP통신에 따르면 28, 29일 카이로에서 최대 6,000여명의 시민이 벽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고 최루탄과 공포탄을 쏘는 경찰과 충돌해 1,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29일 타흐리르광장은 통제됐지만 시위대는 여전히 거리에 머물렀다. 한 시위 참가자는 "마치 1월 25일(민주화시위가 처음 일어난 날)이 다시 온 것 같았다"고 AP에 말했다. 첫 시위부터 무바라크 하야까지 18일간의 시위상황이 재연된 꼴이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시민혁명 때 경찰의 유혈진압으로 사망한 희생자의 유족들이 중심이었다. 이집트 내무부는 "사망자 추모식이 열리는 극장 안으로 유가족들이 난입하면서 충돌이 시작됐다"며 이들을 비난했고, 시위 주동자들은 "경찰이 추모식에 참가한 유가족을 폭행했다"며 정부 측에 화살을 돌렸다. AP는 이번 시위가 부패 및 민주화시위 무력진압 혐의를 받고 있는 구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늦어지고 있는데 따른 불만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구시대 청산과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군부에 대한 불만은 반정부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군부는 정정불안을 이유로 각각 9월, 11월로 예정된 총선과 대선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현지 방송에 따르면 시위대는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후세인 탄타위 최고사령관을 지목하며 "민중은 최고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AFP통신은 "처음에는 무바라크 정권의 전복을 요구했던 시위대가 이제는 군부 쪽으로 분노의 방향을 틀었다"고 전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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