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무 살 대학생이 된 박민우(가명)씨는 1995년 6월 29일을 잊을 수 없다. "부산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서울에서 생일선물 한가득 사 갈게"라며 전화를 걸었던 엄마는 민우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전화 통화 후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건물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당시 30세였던 민우 엄마 김윤정씨는 그날 오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 502명 중 한 명이다.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일했던 김씨는 1주일만 근무 시간을 바꿔달라는 동료의 부탁 때문에 출근한 첫날 참변을 당했다. 20일간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김씨 시신은 발견되지 않아 현장에서 찾은 면허증과 핸드백 등만 챙겨 겨우 장례를 치렀다.
외할머니 윤증섭(72)씨 밑에서 자란 민우는 29일 드디어 엄마를 만났다. 16년 동안 미뤄 온 만남이었다. 당시 네 살 꼬마가 이제 대학생이 됐다. 그동안은 어리고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외할머니가 추모제 참여를 만류해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외할머니와 부산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온 민우는 위령탑에 새겨진 희생자 명단에서 단번에 엄마 이름을 찾았다. "엄마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많이 보고 싶었나 봐요. 한 번에 엄마 이름을 찾은 걸 보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6주기 추모제가 이날 오전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 참사 위령탑 앞에서 열렸다. 폭우 속에서도 유가족 400여명이 참석해 먼저 간 사람들을 기렸다. 굵은 빗줄기 속에 연신 눈물을 닦던 70대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위령탑에 새겨진 딸의 이름을 여러번 닦아 냈다. 눈물이 빗물에 섞여 흘렀다.
당시 여동생 은정(당시 29세)씨를 잃었다는 이재호(48)씨는 "아들을 낳은 다음날 동생이 사고를 당했어요. 병원에서 붕괴소식을 듣자마자 백화점으로 달려갔지요. 축하받다가 하루아침에 위로받는 처지가 됐죠"라며 울먹였다.
붕괴 사고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손권태(30)씨는 학원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올 때까지 누나 선주(당시 22세)씨의 사고를 알지 못했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붕괴 17일째 되던 날 삼풍 사고 마지막 구출자 박승현씨 생존 소식을 듣고 누나도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가졌지만 선주씨는 돌아오지 못했다. "제가 얼마 전에 결혼했어요. 아내를 데리고 이곳에 왔는데 누나가 많이 보고 싶더군요. 하늘에서 잘 봤을 거예요, 제 결혼식."
엄숙하게 진행된 추모제였지만 어수선한 광경도 있었다. 유족회 경과 보고 시간엔 집행부 간 다툼도 있었고, 행사 후엔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초청 받은 기관장이나 삼풍백화점 관계자들은 행사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던 서초동 1685-3번지 일대는 지금은 평온해 보였다. 백화점 대신 37층짜리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선 이곳에선 16년 전 붕괴사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복합단지의 한 관계자는 "건물 착공과 준공, 입주 때 3차례 고사를 지낸 게 전부"라고 말했다. 유족들만 기억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6주기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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