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초중고교 새 역사 교과서의 뼈대로 마련한 '2011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가장 큰 폭의 변화를 보인 분야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다. 80%에 이르렀던 근현대사 비중을 50% 수준으로 낮추고, 고려와 조선 시대의 비중을 강화한 것이다.
고교 한국사 개정안에 따르면, 우선 한국사 성취기준 항목수는 51개에서 34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2009년 교육과정 개정으로 고등학교 역사 교육의 수업 시수가 102시간에 85시간으로 단축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여러 영역의 성취기준 항목이 통합됐지만 고대는 5개 항목으로 그대로 유지됐고, 고려시대는 2개 항목에서 오히려 5개 항목으로 늘었다. 항목이 대폭 축소된 시대는 일제 강점기로 12개에서 5개로 줄었다. 광복 이후도 12개 항목이 6개로 축소됐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는 "근현대사 중심의 현행 한국사 교과서를 전 시대를 골고루 서술하는 통사 체제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또 중학교 역사 교과서 역시 수업 시수를 고려해 한국사 영역의 성취항목을 50개에서 42개로, 세계사 영역은 35개 항목에서 27개 항목으로 줄였다. 중학교 경우 역으로 근현대사 부문의 성취기준 항목 9개는 그대로 유지하고 고려 시대는 9개에 5개로 줄였다. 전근대 비중이 높았던 중학교 교과서도 일정 정도 시대를 일괄하는 통사 체제로 바꾼 셈이다. 개정안은 다만 중학교는 정치 문화사 중심, 고등학교는 사회경제사 사상사 대외관계사 중심의 통사라는 차별성을 뒀다.
이에 대해 학계는 중학교 교과서는 전근대사 중심, 고등학교는 근현대사 중심의 현행 체제를 뚜렷한 이유 없이 뒤집는 시대착오적 개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주진오 상명대 사학과 교수는 "과거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되풀이해서 배우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학계가 3~4년간의 논의를 거쳐 2007년 현행 체제로 바꾼 것"이라며 "어차피 정치ㆍ문화와 사회ㆍ경제를 통합적으로 살펴야 해 다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배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통사 체제 개편이 그간 보수 진영이 근현대사가 좌편향적으로 기술됐다고 집요하게 공격해온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일제 이후 역사가 부담스러워 현대사를 간략히 하자는 보수 진영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니겠냐"며 "역사에서 현대사 영역이 매우 중요함에도 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권위주의 시대의 국사 체제로 퇴행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역사 교과서의 개정 방향이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사편찬위는 3월 15일 대학교수와 초중고 교사들 21명으로 역사 교육과정 개발 정책연구위원회를 발족해 3개월 만에 개정안을 내놓았고, 교과부는 8월에 이를 확정 고시할 예정이다. 주 교수는 "학계의 의견을 제대로 듣는 과정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 정부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과학부는 현재 새 개정안에 따른 교과서 검정 일정을 검토 중인데, 현 추세로라면 내년 검정 절차를 거쳐 2013년부터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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