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개혁 방안 발표가 8월로 미뤄졌다. 해묵은 금융감독기구 개편 문제를 불과 두 달 만에 해소하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다. 설령 결론이 나온다 해도 흡족한 해법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다시 두 달 가량 시간은 벌었지만, 여전히 전망은 어둡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만신창이가 되긴 했어도,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금피아의 저항은 어느 때보다 거센 상황이다. 이러다가 결국 금융감독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상당하다.
개혁안 발표 2개월 연장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은 29일 브리핑을 갖고 "총리실 산하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 활동을 8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달 9일 출범한 TF는 이달 말까지를 활동 시한으로 잡고 이번 주 중 최종 결과물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정부가 밝힌 연장 이유는 각계 의견을 더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 총리실장은 "의견 수렴의 폭을 넓히고 필요에 따라 현재 30개로 분류된 주제도 추가해 광범위하게 논의할 것"이라며 "하나를 고치더라도 제대로 고치고 확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간 TF에서 비공개로 논의를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공청회 토론회 등 공개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밟겠다는 것이다.
국회의 저축은행 국정조사가 시작된 것도 고려 요인이 됐다. 총리실 관계자는 "국정조사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충분히 반영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국정조사가 8월 12일까지 46일간 진행되는 만큼 TF의 쇄신안 발표도 빨라야 8월 중순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해당사자간 갈등이 원인
하지만 총리실 설명과는 달리, 주요 쟁점에 대한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갈등이 개혁안 발표를 늦출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와 유착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등한시했다는 지적에 따라 금감원 내 소비자 보호 관련 3개국을 떼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었지만, 금감원 측이 산하에 센터 형태로 둬야 한다고 버티면서 최종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에 일부 감독권한을 넘기는 방안을 두고도 금피아의 반발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가 부실 저축은행을 단독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대를 이뤘지만, 그 외의 권한을 한은이나 예보에 넘겨주는 것을 두고는 반대 기류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물론 정부는 이런 해석을 경계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뒤로 미루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지금 가면 수 년 갈 구조인데 한번 하는 김에 잘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가재(모피아)는 게(금피아)편
TF가 출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예고 없이 금감원을 방문해 저축은행 부실을 초래한 금감원의 부정 부패를 질타한 직후. TF를 띄우면서 비록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정부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았다. 당시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정권 초기에도 하기 힘든 일을 정권 후반부에 할 수 있겠느냐"고 했고, 금융위원회 고위 인사 역시 "소프트웨어 정도면 몰라도 하드웨어를 건드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TF 구성을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TF 멤버 21명 중 3분의 1인 7명이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였기 때문. 금피아와 끈끈한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모피아 집단이 금융감독 혁신을 위한 근본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특히 금융당국 내에는 대통령이 아무리 호통치고 질타하더라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였다. 생색내기 수준 이상의 개혁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감원 개혁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는 정권 후반부에 다뤄서는 안 된다"며 "내년 대통령 당선자가 임기 초기에 강하게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박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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