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으로 6월 국회가 공전하면서 더 시급한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 대행제도)법 입법이 결국 무산됐다. 당장 9월 출범 예정인 종합편성(종편)채널이 직접 광고영업에 뛰어드는 길을 터준 것으로, 자사 미디어렙 설립을 원하는 MBC와 SBS까지 광고 영업에 나설 경우 미디어업계는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정글이 될 전망이다. 언론ㆍ시민단체들은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 경쟁력이 취약한 방송은 물론 신문시장 전반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돼 미디어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여야는 지난 27일에야 처음으로 미디어렙 법안을 테이블에 올렸으나, 결국 2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종편의 광고영업을 미디어렙에 위탁할 것인가를 놓고 이견만 확인한 채 논의를 끝냈다. 한나라당은 종편을 기존의 채널사용사업자(PP)로 봐야 한다며 현행법상 유료방송의 광고 직접영업이 보장되는 만큼 종편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종편의 미디어렙 편입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맞섰다.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광고판매 독점 체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이후 대체입법 시한에서 1년 6개월이나 지났지만 여야는 여전히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단 8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미디어렙 법안이 논의될 예정이지만 때는 늦으리라는 전망이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종편이 개국을 준비하며 9월부터는 광고 계약을 해야 해 그 이전에 사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8월에 입법이 된다 해도 사후약방문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종편사들이 광고 인력 확보에 나서 케이블업체 등 관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대 광고주 가운데 하나인 대기업의 임원은 "광고비는 한정되어 있는데 종편이 출범해 광고를 내놓으라고 하면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하반기에 얼마나 시달릴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고 영업력이 취약한 지역ㆍ종교 언론들은 존립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대환 GTB(강원민방) 노조 위원장은 "최근 5년간 지역방송 광고가 30% 가까이 줄었는데 덩치 큰 고래들의 광고싸움에 휘말리면 지역 언론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냐"며 "종편과 MBC, SBS의 미디어렙 편입은 지역언론 고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8월에도 미디어렙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수신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수신료 문제가 미디어렙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규모 방송과 군소 방송, 신문 업계 등이 워낙 첨예하고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이라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다. 한나라당은 현재 미디어렙 법안과 관련해 종편 편입 반대 외에 당론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민주당 또한 종편을 미디어렙에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1공영 1민영'을 당론으로 확정했지만 세부 안으로 들어가면 의원별로 의견이 다르다.
MBC를 공영이나 민영 중 어디에 넣을 것인지, MBC와 SBS의 요구대로 독자 미디어렙을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민주당과 언론ㆍ시민단체들도 종편의 미디어렙 편입에만 의견을 같이 할 뿐 MBC의 미디어렙 편입 여부 등은 이해관계에 따라 견해가 갈린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은 28일 성명을 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 문제를 빌미로 미디어렙 입법을 위한 공론의 장을 봉쇄했고, 방송 광고의 무법 상태를 조장해 종편에게 광고 직거래를 보장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30일 주요 지·본부장이 참석하는 비상 대표자회의를 열어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이후 대의원대회를 거쳐 파업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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