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대책에 가계를 위한 고심의 흔적이 없다. 금융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대책엔 채권자인 금융회사의 위험 관리를 겨냥한 고만고만한 조치들 외에, 정작 채무자인 가계를 위한 부담 완화책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의 잇단 금리 인상에 꼼짝없이 '이자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 서민 가계는 그나마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조치를 기대했지만 당국의 발상 전환은 없었고, 서민들의 기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무산됐다.
이번 대책은 한마디로 가계가 돈을 너무 많이 빌려 쓰니 돈줄을 죄어야겠다는 공급 중심의 발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고위험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편중 대출에 대해 금융회사의 BIS 비율 산정 시 불이익(위험가중치 상향)을 주겠다는 것이나, 카드사 레버리지(자기자본 대비 총자산)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상호금융사에 대한 여신 건전성 분류를 강화하겠다는 것 역시 완곡하지만 서민 가계 등으로 흘러가는 '고위험 대출'을 억제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반면 체크카드를 쓰면 세제지원을 확대하고, 고정금리ㆍ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에 대한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것은 일견 가계에 혜택을 주는 조치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고정금리ㆍ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에 대한 소득공제는 그 이익이 최소한 단기 변동금리 대출의 저금리에 따른 기대이익과 맞먹을 정도라면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약 90%를 차지하는 변동금리 대출을 줄이는 데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조치 역시 궁극적으로는 가계에 돈을 덜 쓰고, 덜 빌리라는 얘기일 뿐이다.
금융당국의 1차 정책목표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유지인 만큼 가계의 형편을 도울 묘안을 내지 못했다고 무조건 탓할 일은 아니다. 가계도 돈벌이가 시원찮으면 일단 허리띠부터 조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돈 빌리고 싶어 빌리는 사람 없고, 금리 변동 무서운 줄 몰라 변동금리 대출 하는 게 아니다. 금융당국은 시스템 위험을 막는 '칼'만 휘두를 게 아니라, 대출금리체계의 적정성 조사를 통한 가계 금리부담 경감 등 가계를 배려하는 미시대책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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