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윌리 순(45ㆍ사진) 박사는 화석연료에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기온상승 및 빙하감소의 원인이라는 일반 학설을 주장하는 대신 태양의 변화 때문에 급속한 기후변화가 초래됐다고 주장해 주목 받은 천체물리학자다.
미국의 교토의정서(온실가스 감축목표 협약) 가입에 반대하는 석유 메이저나 보수진영에게 순 박사의 주장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을 터. 때문에 그는 기후변화 관련 의회 청문회나 토론회에서 교토의정서 반대 측의 논리를 대변하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런 순 박사가 지난 10년 동안 석유ㆍ석탄 관련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금 지원이 연구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학자의 양심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그간 연구 결과가 과연 공정했느냐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 그린피스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근거로 "순 박사가 2001년부터 석유 메이저 엑손 모빌 등 에너지 관련 기업과 단체로부터 1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28일 폭로했다. 순 박사는 2001년 이후 미국 석유협회로부터 27만4,000달러를 받은 것을 비롯해 엑손 모빌에서 33만5,000달러, 석탄 기업이 만든 재단에서 17만 5,000달러를 받았다. 석유 메이저가 설립한 모빌 재단, 텍사코 재단에서도 연구비 명목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 내에서 순 박사는 화석연료 사용과 지구온난화의 관계를 부인하는 대표적인회의론자(sceptics)다. 그는 2003년 한 논문에서 "지난 1,000년 중 20세기는 온도가 가장 높지도 않았고 온도 변화가 가장 급격한 시기도 아니었다"고 주장해 학계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왔다. "북극곰이 줄어드는 것은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의 접촉 등 다른 이유"라는 발언도 논란으로 이어졌다. 보수 정치인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이 주장을 근거로 멸종 위기종 명단에서 북극곰을 빼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순 박사는 그린피스의 폭로에 대해 자금 지원과 연구결과의 상관관계를 부인하며 "그린피스가 내 연구에 돈을 지원했더라도 받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 반대 진영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그의 이런 행태에 대해 미국 그린피스의 연구 책임자인 커트 데이비스는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움직임이 이처럼 지난 20년 동안 석유회사와 석탄회사의 지원을 받아 왔다"며 "순 박사 같은 학자들은, 본인들은 중립을 자처하지만, (이들 회사의 조종을 받는) 장기판의 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